◈내가 왕바리새인 입니다 사53:2~3, 갈6:14, 고전2:15 도서 스크랩
※신앙의 본질인 '내면적 자기 성찰'로 인도하는 좋은 책이라서, 일독을 추천합니다.
아래는 위 도서에서 스크랩한 내용들입니다.
♣나(故 허운석 선교사)는 나사렛에 살던 예수님을 묵상하곤 했습니다.
높은 기온과 습도에 벌레가 기승을 부리는 아마존에서 살 수 있었던 것도
나사렛에서 살던 예수님을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도 예수님보다 더 열악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소년 가장이 되신 분입니다.
홀어머니에 동생들도 많았으니 하루 종일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가 빠듯했을 것입니다.
가난한 데다 예수님은 얼굴도 못생겨서 볼품이 없었습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가난하고 배운 것도 없고 못생긴 외모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까지…
예수님은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는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괴롭히게 됩니다.
젊은 예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혈기왕성한 청춘이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나서고 싶은 욕구도 컸을 것입니다.
우리 같았으면 국민적 영웅이요 스타가 되어 온갖 인기와 부를 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볼품없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살아가셨고
혈기왕성한 청춘도 묵묵히 누그러뜨리며 사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을 당신을 위해 단 한 번도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자기 체면을 좀 세워 달라고 요구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절망했다’거나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우리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지 불평하고 원망하고 좌절해선 안 됩니다.
우리 인생이 적어도 예수님보다 나으니까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위로의) 본을 보이기 위해 그렇게 사셨으니까요.
‘내가 가난하다’, ‘못 배웠다’, ‘못생겼다’, ‘굴욕을 당했다’, ‘상처를 받았다’…
어떤 것도 핑계 댈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모멸을 받으셨는지, 멸시를 받으셨는지, 낮아지셨는지
우리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충만함과 기쁨으로
모든 시험과 고통을 통과해서 사탄에게 승리하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약함으로
자기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주장하지 않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pp.167~168
♣저희가 아마존에 처음 갔을 때, 원주민들의 언어에는 사랑, 용서, 감사 같은 단어가 아예 없었습니다.
신발 하나 제대로 챙겨 신은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삶의 양식도, 언어도 다른 사람을 막상 눈앞에서 보니,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오로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그들이 우리를 해하러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우리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과 먹을 음식에 독을 탔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외부자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가 전도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를 모함하고, 저주하고, 해코지하고, 심지어 똥을 퍼서 던질 때가
전도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그들의 모든 해악을 이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세운 전도 전략이었습니다.
그들의 해코지를 아무 말 없이 당하고 용납하고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볼 때,
그들 속에 사랑이 조금씩 담겨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받기를, 저주 받기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머리가 나빠서 그들이 우리를 해코지한 사실은 금세 잊어버렸습니다.
문제는 하나님한테 배운 것도 금세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힘든 일이 또 생기면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요. 아버지, 진짜 너무하십니다” 하고 투정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내가 그들을 네게 보낸 것은
그들한테서 네 모습을 보라고 한 거라는 사실을 또 잊었니?” 하셨습니다.
계속 반복된 항변과 대답 속에서 우리는 연단되었습니다. pp.177~178
♣상으로 받은 암
한번은 기도 중에 거대한 홍수 물살에 내가 떠밀려 가는 환상을 봤습니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거친 물살이었습니다.
주님께 이 환상이 무엇이냐고 여쭸습니다.
그랬더니 에스겔서 47장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에스겔이 주님을 따라 물을 건너는 내용입니다.
처음에는 발목까지 찼던 물이 허리까지 올랐다가 나중에는 헤엄을 쳐야 할 만큼 불어나는 환상이었죠.
에스겔서와 나의 환상을 접목해 보니
드디어 내가 그토록 바라던 특별한 능력을 받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대에 차서는 하나님이 그 능력을 언제 주시려나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2006년에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왔을 때
넓디넓은 신학교 교정을 거닐며 기도하는데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얘야, 너 이 땅에서 상을 받을래? 저 천국 내 나라에서 상을 받을래?”
그 순간 나는 얼마 전에, 기도 중에 본 환상(엄청난 물살)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드디어 내가 기대하던 ‘능력’을 주시려고, 내 생각을 묻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 저는 그동안 하도 구박을 받았으니까, 이 땅에서 성공한 선교사가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고 세상에서 받는 축복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이 뭔지 궁금해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한테 핍박받는 것이다” 하는 겁니다.
나는 화가 났습니다. 대단한 축복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핍박이라니!
하나님 나라에서 받는 상은 무엇이냐고 여쭤야 하는데
미처 묻지 못한 채 한국에서의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러던 중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마존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그 시간에
병원 수술실에 올라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암투병 중에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상이 다시 해석되었습니다.
도무지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거친 물살은 암이었습니다.
내 생명을 그분의 생명 싸개로 덮으시기 위해
레아처럼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삶으로 이끄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상을 받는 삶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원주민의 99퍼센트가 “후치(브라질에서 나는 성경의 ‘룻’을 뜻하는 ‘후치’라고 불립니다)가
하나님한테 잘못한 게 있으니까 그런 매를 맞은 거지”라고 말했습니다.
내게 발견된 암을 하나님의 징계라고 믿는 것입니다.
한국의 목회자들도 자기 교회 성도들이 시험 든다며 나를 강단에 세우기를 꺼려하였습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나처럼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이 병에 들면
‘하나님 믿어 봐야 병밖에 얻는 게 없구나’ 하면서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다며 염려했습니다.
나의 삶 자체가 그들에게 시험 거리인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수치를 당하자, “선교사님, 빨리 병이 나아서 더 많이 일하셔죠” 하는 말이
위로인지 비난인지 분간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너는 아픈 것이 일하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건강해서 일한 것보다 아파서 누워 있으면서 더 많은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pp.183~184
♣생명의 부활을 준비하는 영혼의 겨울
나는 겨울나무가 좋습니다.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서 추운 겨울을 혼자서 버티는 겨울나무를 보면 기쁩니다.
그렇게 겨울을 혼자 외롭게 보내고 나면 봄이 되어 다시 부활할 것이기에 기쁩니다.
겨울나무는 내가 가야 할 길 같아서 함부로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앓는 이 암은 나를 헐벗게 하고 앙상하게 벌거벗겨 십자가에 높이 매답니다.
이 십자가를 통과하면 부활의 봄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런 뒤에 성령의 열매가 온전히 맺어질 것입니다.
내가 겨울나무처럼 헐벗기 전에는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내 안의 수많은 결점들이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겨울나무가 되어 사람들이 떠나고 외롭고 고독해지니까
내 안에 숨겨졌던 결함들이 속속들이 드러났습니다.
바람만 불면 온몸이 흔들리던 연약한 신앙이 드러나고,
무슨 문제만 생기면 ‘어디 가서 위로 받을까, 누구한테 기대나’ 하던 내 안의 우상들이 들통났습
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연약하고 미련한 내 결점들을 드러내서 십자가에 매다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깊은 경륜을 겨울나무가 되어 보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p.209
♣고독 후에 찾아올 영광의 부활
나는 말기 암 환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나자 암에 걸린 일이 감사합니다.
만일 지금도 건강한 몸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선교사로 살았다면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른 채 인생을 허비하다가 죽음을 맞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두렵고 떨립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나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명의 계보를 일으키는데 지대한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닥친 문제가 해결되고 시련이 물러나는 것에 관심이 많지만
내가 만난 하나님은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생명의 계보를 일으키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나는 이 말씀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나를 못 박아 죽이고 십자가에 높이 달아 주는 것,
그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내가 높은 장대에 매달리면 사람들이 나를 떠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사람들이 떠난 것처럼 말입니다.
제자들조차 자기 목숨을 보전하려고 도망갔습니다.
사도 요한도 밧모 섬에서 외롭게 말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떠나서 외로워지면
주님 한 분만 더 간절히 의지하게 됩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에 이르게 됩니다.
세상을 저절로 끊게 됩니다. 쓸데없는 일들과도 끊어집니다.
그러면 이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영광스런 부활이 있습니다. pp.215~216
♣나는 남들이 나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말해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의 영적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칭찬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까다로운 사람이 나는 고맙습니다.
내 옆에 까다롭고 까칠한 사람이 있다면, ‘나의 영적 상태를 점검할 시간이구나’ 하고 기뻐합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5).
신령한 자, 즉 영적으로 성숙한 자는 타인의 판단이나 비판을 받았을 때
그로 인해 상처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든지 타인의 판단이나 비판을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때 성숙하지 않은 사람은 발끈하며 마음에 상처를 쌓아 둡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사람과 성숙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바로 타인의 판단이나 비판을 들었을 때, 그가 보이는 반응에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숙한 사람, 즉 주님과 연합한 사람은
상처가 되는 일을 당하거나 두려울 만한 일을 만나도 그로 인해 놀라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연단이요, 십자가로 이끌기 위한 은총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 스스로 죽기 어려운 것을 주님이 대신 죽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타인의 판단과 비판을 받았을 때 허둥대고 상처를 받고 두려워하고 놀라는 것은
그것의 정체를 몰라서입니다. 정체를 알면 놀랄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땅히 있는 일’이라고 치부합니다. *벧전4:12
믿는 자가 당연히 당하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의연하게 넘기게 됩니다. p.220
♣군사로 부름 받은 ‘마른 뼈’
암 투병 중에 읽은 에스겔서에서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나오는 ‘마른 뼈’들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
또는 신앙이 미지근한 신자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또는 종말에 회복될 유대 민족을 가리키지도 않습니다.
부차적으로 그런 뜻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은,
‘자아가 처리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신앙이 제법 좋은 신자들입니다.
군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논산훈련소에서부터 시작해서,
유격훈련, 동계훈련, 야간훈련, 극기훈련, 천리행군 등
많은 훈련을 거쳐야 비로소 군인이 됩니다.
또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격 요건이 되어야 입대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여호와의 군사’로 사용하기 위해
믿음의 훈련과 연단을 거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연단하는 훈련이 어찌나 고된지, 야곱도 욥도 마른 뼈같이 타들어 갔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받은 자들이 마른 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의 군대’를 일으키시기 전에 먼저 마른 뼈가 되도록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환난 가운데 던져두십니다.
물론 마른 뼈 환상과 관련해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나는 이런 감동을 받은 것이니, 여러 해석 중 하나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마른 뼈"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굉장히 깊은 영적인 단계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여호와의 군사로 부름 받아 쓰임 받기 직전의 단계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아가 거의 없어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생기’만 들어가면, 완전히 강한 여호와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른 뼈는 성령이 온전하게 내주하실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과 나 자신에게 소망을 둘 수 없어서, 자아가 바싹 마른 사람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의 군사가 아무나 되겠습니까?
어린아이처럼 떼쓰고 남 탓하고 시기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의 군사가 되겠습니까?
군사로 부름 받으려면 먼저 마른 뼈부터 되어야 합니다.
야곱처럼, 욥처럼 인생에 불어닥친 엄청난 풍파와 회오리를 겪어 내야 합니다.
그 환난의 시험을 통과해서 성숙해진 사람들이 여호와의 군사로 부름 받을 수 있습니다. pp.22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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