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창조과학

그리스도의 부활 - 확증된 역사적 사실(한국 창조 과학회)

배남준 2016. 3. 2. 17:59

            

 

부활의 예언들 (Predictions of the Resurrection)

그리스도의 부활에 제자들은 완전히 허를 찔렸었다. 그리스도가 죽은 다음 그들은 한 가닥의 희망도 갖지 못했던 것이 명백하다. 실제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서는 환영을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였다고 전해진다 (누가복음 24:37).

그런데 그들은 성경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그가 죽을 것이며, 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다시 살아나신 그를 만났을 때 하나같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나중에 그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신 바도 있었다(누가복음 24:44).

비록 피상적인 독자한테는 구약에 있는 그의 부활에 관한 예언들이 명백하게 들리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에서 성경을 성실하게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것이다. 창세기 3:15, 시편 2:7, 시편 22:14-25, 시편 30:29, 시편 40:13, 시편 110:1, 시편 118:21-24, 이사야 53:9-12, 호세아 5:15-6:3, 스가랴 12:10, 등등에서 보이는 예언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장차 오실 메시아는 죽음에 처해졌다가 다시 살아나신다는 예언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구약에서 부활의 말씀을 그에 해당하는 예언으로 해석할 수 없는 사람도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에서 이 뜻이 명백하게 담긴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참조: 요한복음 2:19. 마태복음 12:38-42, 17:22-23. 20:17-19, 26:30-32, 요한복음 10:17-18, 16:16, 그리고 4복음서의 많은 말씀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제자들이 부활의 이야기를 제 나름의 상상으로 꾸며낼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부활에 관한 그 많은 예언을 성경과 그리스도의 입을 통해서 듣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부지부식 간에 부활을 예상하고 있지 않았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들이 마침내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부활을 간증한다고 할 수 있다.

 

빈 무덤 (The Empty Tomb)

제자들이 확인한 부활의 첫 번째 증거는 속이 텅 빈 무덤이었다. 그리고 이 증거는 지금까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 속을 들여다보고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의 시신을 겹겹이 감쌌던 세마포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요한 19:39, 40). 그리고 시신만이 빠져나가 사라지고 폭삭 주저앉은 수의만이 그대로 남겨진 채로 있었다. 그 때에 요한이 무덤 안에, 들어가 보고 믿더라(요한복음 20:8) 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들이 놀랬던 것도 당연하다. 현장에서 느꼈던 요한의 의심과 두려움은 당장에 놀라운 믿음으로 변했다. 폭삭 주저앉은 수의를 보고 십자가에 못박혔던 그리스도의 육신이 다시 살아나서 세마포의 묶음을 빠져나가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오르셨다는 사실말고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요한의 집으로 내달렸다. 그 놀라운 소식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일러주려고 그랬을 것이다(참조. 요한 19:27, 20:10). 얼마쯤 후에 무덤에 먼저 왔었던 여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들도 또한 무덤이 비어있음을 알게 되었다(누가복음 24:3).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영혼만의 부활이 아니고, 육신의 부활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영혼의 부활이라는 주장은 실질적으로 자가당착에 빠진다. 영혼은 죽지 않으므로 '부활'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부활은 육신을 실제로 떠났던 영혼이 육신으로 되돌아왔을 때 일어난다.

빈 무덤의 간증이 너무도 극명한 까닭에 그리스도의 적들은 어떻게든 그리스도의 부활을 깔아 뭉개버리기 위하여 사람을 아연실색케 하는 수많은 황당한 설명들을 고안하였다. 그 첫 번째 고안은 제자들이 시신을 훔쳤다는 허구다 (마태복음 28:11-15). 그따위 설명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제자들은 제 목숨이 아까워 다들 몸을 숨기는 일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더욱이 밀폐된 그 무덤 입구를 큼직한 바위덩어리가 가로막고 있었던 데다가, 로마 병사들의 경비도 삼엄했을 것이다 (마태복음 27: 62-66).

이 허구만큼이나 무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황당한 다른 고안들 가운데 하나는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었던 것이 아니고, 다만 쇠잔한 몸을 지탱하지 못한 나머지 졸도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는 죽었던 것으로 오해되어 매장되었다가 무덤 속에서 의식을 되찾고 일어나서 무덤을 떠났다는 줄거리다. 그토록 쇠잔한 상태에 있던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인가? 시신을 겹겹이 감싼 세마포와 몰약의 엄청난 무게를 그가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었으며, 로마의 봉인을 부수고,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큼직한 바위를 굴려버리고, 망을 보던 로마 병사를 어떻게 물리치고 제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인가? 이 어이없는 허구를 지지하는 사람들한테까지도 이 이론은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 뿐만 아니다. 수없이 얻어맞고 무의식 상태에서 다시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다 흘리시고 감당할 수 없을 만치 쇠잔해진 예수가 어떻게 겁에 질린 제자들 속에 온전한 모습으로 변하여 나타나서 그들을 위무할 수 있었겠는가? 백보 양보해서 그랬다고 쳐도 그는 조만간에 다시 쓰러져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그 이후의 부활의 설교는 허위가 아니면 위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 모든 조작들과는 달리, 그가 십자가에서 죽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빌라도는 로마 백부장에게서 이 보고를 받았다 (마가복음 15:43-45). 로마 병사의 창끝은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옆구리를 잔인하게 꿰뚫어 (요한복음 19:34) 곧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게 하였다고 하는 내용으로 보아 그의 심장이 완전하게 주저앉아버렸음을 증언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를 필두로 하고 베드로와 요한, 그 다음에 다른 여인들이 모두 엉뚱한 무덤에 들어갔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토록 멍청한 실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당시 그곳에는 다른 무덤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곳은 아리마대의 요셉이 소유하고 있던 정원으로서 (마태복음 27:60, 요한복음 19:41) 다른 사람의 무덤은 전혀 없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 뿐만 아니다. 만약에 시신이 여전히 어디엔가 묻혀있었다면, 로마나 유대 당국에 의해 어렵지 않게 시신을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주가 지난 후, 무리를 이룬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영접할 때 로마와 유대 당국은 새로운 기독교 신앙의 확산을 막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써봤으나 전적으로 실패하였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그들이 그냥 예수의 시신을 내놓기만 했어도 기독교도들의 부흥운동은 하루 밤새에 송두리째 괴멸되고 말았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은 이것만은 할 수 없었다.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는 바로 그 몸으로 천국에 오르셨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The Appearance of Christ)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증거가 전부는 아니다. 그가 무덤을 떠난 이후 최소한 열 번에 걸쳐 여러 곳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들의 주님을 실제로 만났던 것이다. 아마 그의 나타나신 순서가 아래와 같이 되었던 것 같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요한복음 20:11-18; 마가복음 16:12)

다른 여인들에게 (마태복음 28:8-10)

베드로에게 (누가복음 24:34; 고린도전서 15:5)

엠마오로 가는 노상에서 두 사람에게 (누가복음 24:13-35; 마가복음 16:12)

열 명의 제자들에게 (누가복음 24:36-43; 요한복음 20:19-29)

여드레 후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20:24-29)

디베랴 바닷가에서 일곱 명의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21:1-23)

오백여 그를 뒤좇는 형제들에게 (고린도전서 15:6)

야고보에게 (고린도전서 15:7)

승천하는 곳에서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 (사도행전 1:3-12)

그밖에도 그는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을 것이다. 실제로 누가는 해(害)받으신 이후에 또한 저희에게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라고 했다(사도행전 1:13). 그는 확실히 스데반에게 나타내셨으며 (사도행전 7:56), 마지막으로 그는 드디어 바울에게도 나타나셨다 (사도행전 9:38, 고린도전서 15:8). 그리고는 다시 한번은 요한에게 나타나셨던 일이 있다(요한계시록 1:12-18).

자, 그런데 회의론자들은 여섯 곳에서의 나타났던 상황들에서 다양한 모순점이 드러난다고 지적하면서 부활 후 그리스도의 나타나신 증거들을 부인하려 노력하였다. 그들의 지적한 내용은, 마태복음 28:8-20, 마가복음 16:9-20, 누가복음 24:13-15, 요한복음 20:11-21, 14; 사도행전 1:1-11, 그리고 고린도전서 15:5-8의 기사들이다. 그리고 복음서의 저자들이 이야기를 꾸몄다고 비난한다.

물론 겉으로 나타나는 단순한 사실만을 보면 이야기 속에는 많은 피상적 모순점들과 탈락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제자들이 그 어떤 모의 같은 불순한 일을 꾸미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일 수 있다. 만약에 그들이 이야기를 꾸몄다면, 각 사람은 나머지 사람들과는 독립적으로 제 나름의 이야기를 꾸몄을 것임이 확실하다. 이 대목이 진정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특히 지적되는 모순점들도 서로를 상세히 비교 분석하여보면 봄눈 녹듯이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여러 명의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목격자들이 제 각기 유리한 입장을 내세우는 증언들이 피상적인 모순점들을 드러낼 때, 그것들을 면밀히 비교 분석하면 문제가 오히려 더 잘 풀린다는 사실이 증언의 법칙처럼 알려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바로 부활에 대한 다양한 증언들의 경우에 해당한다.

부활 후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부인할 수 있는 마지막 한 가지 그럴듯한 책략은 부활의 증언들을 몽땅 약물이나 최면 또는 히스테리가 원인이 된 단순한 망상이나 환상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따위 황당한 가정은 확실히 자가당착적이다.

그들이 보았던 부활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만약 망상이나 환상이었다면, 그 환상은 인류역사상 유일무이한 현상이 될 것이기에 최대의 주의를 경주한 정신분석적 논리적 정밀조사를 시도해봄이 옳을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로 다른 집단 속에 섞인 수많은 개인들에게 나타나셨던 부활의 그리스도는 모두가 같은 모습이었다. 어떤 때에는 실내에서 또 다른 때에는 실외에서, 언덕 위에서, 한 길 가에서, 또는 호숫가에서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셨다. 더욱이 그들은 애당초 예수를 찾으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를 그들에게 확신시키기 전에는 그들은 최소한 한번은 그를 실질적인 유령으로 오인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당신의 몸을 만져보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손에 상처를 알아보았다 (요한복음 20:27; 누가복음 24:39). 그들은 함께 식사하시는 그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누가복음 24:41-43). 한 번은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그를 보았던 적도 있었다 (고린도전서 15:6), 그들 중 대부분은 그 때의 그의 나타나신 사실에 대한 증언이 필요할 때 살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

이런 까닭으로 환상이라는 이론은 도리에 닫지 않는다. 이 모든 것으로 보아 여러 번에 걸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절대적으로 순수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 빈 무덤과 더불어 그가 모습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은 그의 부활을 어떤 역사적인 사실에 못지않게 확실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귀착시키고도 남는다.

 

사도들의 증언 (The Witness of the Apostles)

 

사도들은 역설하는 설교의 내용에 대하여 더없이 진지하고 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들이 실제로 그럴 수 있었을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그들이 비겁한 도망자로부터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여 그의 부활을 선언하는 담대한 설교자로 변신하는데 까지 걸린 시간적 간극은 그야말로 즉각적이었다. 그렇게 열렬한 설교를 하려면 그들은 재산의 손실이나 엄청난 박해는 물론이고 끝내는 생명까지도 걸어야한다는 것을 각오하여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힘닿는 데까지 설교를 계속하였다. 그들의 설교를 믿었던 군중들도 그들과 똑같은 박해를 받았다.

만약에 그들이 이 모든 것을 조작하였다면, 만약에 그들이 예수의 시신을 은닉하고 있었다면, 만약에 예수께서 어디에선가 병상에 누어 쇠잔한 생명을 겨우 가누고 있었다면, 혹은 만약에 그들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면, 또한 만약에 그들이 만나본 대상이 예수님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허깨비인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과연 그들 모두가 (그들의 설교로 개종한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목숨을 내놓고 그와 같은 가장극(假裝劇)을 계속할 수 있었겠는가? 거기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이 세상 것으로 믿어지지 않는 그 무엇이 그들에게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야말로 세상 것이 아닌 그런 것이다!

빈 무덤과 더불어 여러 증거들━부활의 그리스도의 거듭된 나타나심과 제자들의 변신, 출처 확실한 기록들, 그리고 당연히 2000년에 걸친 기독교 역사의 간증들을 종합하여 살펴본 견지에서 러그비(Rugby)와 옥스퍼드(Oxford)의 역사 교수였던 세계적 역사학자인 토머스 아놀드 (Thomas Arnold) 와 같은 석학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한 사람의 공정한 조사자가 알고 있는 한에서, 인류 역사에서 그리스도를 죽음에 보내셨다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보다 더 확실하고 전폭적인 증거가 어떤 형태로서도 있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1]  

이와 비슷하게, 우리나라의 유능한 법학자들 가운데 한사람이며, 확고한 증거요건의 구성 문제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이고, 하버드 대학교의 법학과의 개척자인 시몬 그린리프(Simon Greenleaf)는 4 복음서를 객관적 증거물로서의 타당성 유무를 감안한 철저한 평가를 거친 후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아무튼, 예수가 실제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들이 확실히 알고 있는 것에 못지 않게 확실하게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기들이 진술한 내용이 진실이라고 그토록 끈질기게 증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육신의 부활이 그 어떤 역사상의 사실에 못지 않게 확실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만약에 우리가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천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서 무덤 속에 묻혔다가 죽음을 이기고 마침내 다시 살아나서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사실이다!  

                                         -한국 창조과학회 자료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