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최근 죽음에 관련된 얘기를 몇 편 쓰다 보니까 뜬금없이 천진무구한 시인 천상병의 귀천이 떠 올른다. 그는 살아 생전 만나는 사람마다 '천원만 달라'고 하여 막걸리를 사 먹었던 것으로 유명한데, 1930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마산중학교에서 [꽃]이라는 시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에게 국어를 배웠고 서울대 상대를 중퇴했으며, [강물]이라는 시가 유치진 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학잡지인 [문예]에 실리게 되어 그때부터 그는 시인의 삶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천상병 시인은 생전에 많은 이야기 거리를 몰고 다니는 그야말로 문학계의 기인 중 기인의 한 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살아있는 시인이면서 '유고시집(遺稿詩集)'을 냈던 사람은 아마 세상에서 천상병 시인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1967년 당시 우리나라는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대남공작단 사건"이라는 소위 '동백림 사건'으로 떠들썩 했다. 정부에서는 북한과 은밀히 연루되었다고 하여서 죄도 없는 예술인들이나 문인(文人)들을 대거 체포하여, 남산에서 그야말로 덮어놓고 고문부터 해서 사람 병신으로 만들어 더 이상 예술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일이 자행되었다.
그 사건에 천상병 시인도 연루되어 갖은 고초를 당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의 모습은 고문 당시 얻은 휴유증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심한 질병을 얻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실체라는 것은 바로 이렇다.
당시에도 천진난만하고 순진했던 천상병 시인은 서울대 상대 동문이자 친구였던 강빈구(姜濱口)라는 사람과 친하게 어울렸는데, 그 강진구가 독일 유학중 동독을 방문했었다는 얘기를 천상병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평소 다른 문인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천상병은 강빈구로부터도 막걸리값으로 5백원 또는 1천원씩 받아 썼다. 그런데 당시 중앙정보부 발표문은 이러하였다.
"강빈구는 간첩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천상병은 강빈구에게 공포감을 갖게 한 뒤, 수십여 차례에 걸쳐서 "1백원 내지 6천5백원씩 도합 5만여원을 갈취착복하면서 수사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문 이후로 몸은 만진창이가 되버린 천상병은 1970년 겨울 어느 날부터인가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며 떠돌다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자주 다니던 명동이나 종로에서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1971년 봄이 다 가도록 종적을 감춘 그는 나타나지 않자,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몇몇 문인들이 연고가 있는 부산에 연락을 넣어봤지만 거기에도 천상병은 없었다.
"죽지 않았을까?"
가까운 시인들은 주민등록증도 없이 이 시인이 길에서 쓰러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결국 이야기는 눈덩이 처럼 불어나, '천상병이 죽었다!'라고 소문이 퍼졌다.
"참 아까운 친구였는데...시집 한 권도 없이 세상을 뜨다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 예감은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되버렸다. 그때 시인 민영등이 "요절시인" 천상병의 유고시집을 묶어주기 위해 이리저리 전갈을 넣어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잡지에 흩어져 있는 그의 작품 60여편을 모았지만 시집 출간비용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인 성춘복이 그 시집을 내겠다고 선뜻 나서 시집은 무사히 발간될 수 있었다.
그래서 1971년 12월에 당시로서는 호화장정의 천상병시집 "새"가 나오는데, 시집출간 소식이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며 장안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상병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날아 들어왔다. 그는 거리에서 쓰러져 있었고 그 것을 사람들은 그를 그저 노숙자나 행려병자로 오인한 탓에 그를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시켜 버렸던 것이다. 얼마 뒤에 천상병은 백치 같은 무구한 웃음을 흘리며, 거짓말 같이 다시 친구들 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천상병 시인은 기인답게 버젓이 살아 있으면서 첫 시집을 "유고시집"으로 낸 유일무이한 시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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