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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리를 감동시킨 모라비안 교인들의 신앙

배남준 2016. 2. 13. 15:47

브리스톨,감리교 운동을 창시한 요한 웨슬레의 사역지와 교회가 있는곳(영국여행) 

                        -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레- 

 

후에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리-그는 자신만만해서 미국에 전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대서양을 건너던 배가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 직전까지 갔습니다. 모두가 혼비백산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모라비안 교인들은  찬송을 부르며 죽음직전에도 평온한 모습이였습니다.  .

 

.폭풍이 지난 후 모라비안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폭풍이 두렵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만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여자와 아이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웨슬리는 신대륙에 건너가 전도할 생각에만 꽉 차 있어서 그저 그려러니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의기양양하게 도전하던 인디안 선교는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그리고서는 모라비안 교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웨슬리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영을 통하여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 하십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당신은 예수님이 당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알고 계십니까?"

 웨슬리는 이 질문에 어물어물 하고서는 크게 깨우쳤다고 합니다.

 

  루돌프 바쿠이젠, 〈바다 폭풍 속에서 항해중인 배〉, 1690년경

 

 모라비안 교인들 중에는 기술공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해외에서 선교사역을 하면 서도 자신들의 생업에 종사하며 장사도 하였습니다. 모라비안 선교의 이론에 따르면 선교사를 후원하는 것으로는 세계복음화를 위한 재정을 충분히 마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선교사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라브라도에서는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장사를 하여 남긴 돈으로 에스키모인들의 생활 필수품까지 무료로 공급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배와 상점을 소유하고 있었고 에스키모인들의 생산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즉 에스키모인들에게 복음만 전하였을 뿐 아니라 생산활동을 극대화하는 것까지 후원했던 것입니다. 남아메리카의 북단에 위치해 있는 수리남에서는 양복점, 시계공장, 제빵공장을 포함한 여러 가지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경제적 영향력은 선교사업의 확장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그 결과 모라비안들은 18세기의 선교를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윌리암 댄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

[모라비안들이 남긴 최대의 공헌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통하여 복음전파를 하고 선교사의 일을 해야만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는데 있다. 모라비안들이 했던 선교사역을 잘 연구해 보면 설교자, 교사, 의사뿐 아니라 사업가도 복음을 온 세계로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라비안 교회의 부흥운동은 오늘의 선교 방향에 중요한 빛을 비춘 역사적 운동이라 하겠다. 그들이 순수한 진리의 말씀에 열정을 가졌다는 점과 또한 교회나 교단 중심적이 되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과 그의 나라 중심적인 운동으로 지향하였고, 그들의 많은 지도자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복음적인 신앙을 표방한 사실들이 그 운동을 그처럼 부패하지 않고 오래 지속되게 한 원인이었으며, 그러한 점이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당신이 서 있는 직장이 교회이고 선교의 장소입니다.  당신 자신이 전도자요 선교사의 사명이 있음을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