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칼럼(하늘소망)

삼국지 제갈량과 못생긴 아내 황월영

배남준 2016. 1. 10. 14:16

 

 

   

 

 

  삼국지를 열독하던 그 어린시절이 그립다.

유비,관우,장비보다 사실 제갈량의 얘기가 더 흥미롭다.유비가 제갈량(와룡)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찌 촉 나라를 세울 수 있었으리요?

삼고초려 (三顧草廬)

옛날이나 오늘이나 사람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겸손이리라.

그의 겸손은 외모가 못생긴 아내를 맞이하여 더욱 빛난다.

외모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예수님의 겸손을

와룡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제갈량의 아내 월영 얘기가 새삼 흥미롭다.

그래서 아래는 '퍼온 글'입니다   


 - 제갈량 아내 월영- 

낭재여모, 즉 남자는 재능이, 여자는 용모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이자 전략가인 제갈량은 못생긴 아내를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제갈량의 아내 월영은 면남의 이름난 명사 황승언의 딸이었다. 월영은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학문에 능했지만 키가 작고 머리가 노란데다가 얼굴이 검어 생김생김이 매우 추했다. 하여 나이가 언 18,9세가 되었으나 혼사말이 전혀 들어오지를 않았다.
황승언은 일찍부터 제갈량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외모나 기량이 더없이 출중했던 그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황승언이 제갈량을 찾아 온 사실을 안 제갈량의 형수는 제갈량에게 황월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제갈량은 “모두들 누런 머리에 얼굴은 검어 추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합디다. 저도 직접 만나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쓴 시들을 본적이 있는데 그 뛰어남에 놀랐습니다.”고 대답했다.
형수의 권고로 제갈량은 황승언 집에 한번 다녀오기로 했다. 그 당시 유비, 관우, 장비가 여러 번이나 제갈량을 찾아와 힘을 합쳐 천하를 바로 잡기를 원했는데 제갈량은 동의할지 말지 고민 중이었다.황승언을 찾아 상의도 할 겸 겸사겸사 해서 그의 집을 찾았다.

황승언의 안내로 집에 들어간 제갈량이 집안을 살펴보니 벽에 화법이 뛰어난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황승언은 “딸이 제 멋대로 그린 것이니 비웃지 말게”라고 말했다. 다음 창밖에 탐스럽게 피어난 꽃들을 가리키며 “저것도 내 딸이 심고 가꾼 것일세.”라고 했다. 제갈량은 황월영의 재능에 이미 감탄하고 있었다.
이때, 황월영이 방에서 나왔다. 제갈량은 그에 추한 외모에 대해서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제갈량이 입을 열었다. 유비, 관우와 장비가 와룡산으로 여러 번 저를 찾아온 적이 있는데 그들을 따라 세상을 다스리는데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저에게 방향을 가리켜 주십시오.” 황승언은 기뻐하며 “유비가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단 말이야. 먼저 자네 생각부터 들어보고 싶네.”라고 되물었다. 제갈량은 “저는 실은 조용한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글이나 읽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복잡한 이 세상에서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지도 않고 그냥 목숨이나 부지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까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월영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은 님이 이름을 날리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당신을 필요로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개인 목숨이나 유지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봅니다. 또 쉬운 일도 아닙니다. 공용이나 양수를 막론하고 예로부터 이런 생각을 품었던 문인들을 보면 결국에는 감금되지 않으면 살해 당하고 아니면 유배를 떠나고....평화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신 분이 계십니까?”

황승언은 딸이 자신의 맘속 말을 하는지라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제갈량도 처녀의 대담함과 슬기로움에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월영은 말을 이었다. “그건 마치 보석이 흙 속에 파묻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깊이 감추려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듣고 있던 제갈량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흥분에 기색이 역역했다. 그는 월영을 한번 바라보고는 “월영처녀의 말씀을 들으니 느낀 바가 많습니다. 실은 저도 뜻을 펼쳐 크게 해보려고 했으나 험난한 과정과 실패가 두려웠습니다. 평생 밭과 씨름하자니 그것도 내키지 않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이런 깊은 생각을 하시다니 정말 탄복 됩니다.”라고 말했다.
와룡강에 돌아온 제갈량은 황월영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들에 혼인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결혼 후 얼마 안되어 제갈량은 뜻을 이루기 위해 유비를 따라 나섰다. 남편이 항상 전쟁터에 나가 있었지만, 황씨부인은 근면한 생활을 하면서 내조를 잘해 제갈량의 걱정을 덜어주는 훌륭한 지원군이 되었다. 제갈량의 친구들과 이웃들의 어려움을 만사를 제쳐놓고 도와줘 “공명이 마누라 고르는 것은 배우지 말아야한다. 황승언의 딸과 같은 추녀를 얻을지도 모르니까.”라고 말하며 비웃던 사람들도 후에는 그녀를 따르고 존경했다고 한다.

황씨부인의 재주가 비상했다. 훗날 사마의와 싸울 때 군량 운반장치인 ‘목우유마’가 등장하는데 제갈량의 발명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지는 제갈량의 아내가 개발한 것이었다고 한다. 제갈량이 싸움터에까지 가지고 다니던 부채에는 아내가 가르쳐준 전략이 적혀 있었고 병사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제갈행군산”과 “와룡단”도 황씨부인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제갈량과 그의 부인은 금슬이 매우 좋았다. 그들은 슬하에 아들 둘, 딸 하나를 두었는데 모두 머리가 비상하였다고 한다. 황씨부인에 대해 일부 야사에서는 절세미인으로도 소개하고 있다. 시국이 어지러울 때라 황월영은 얼굴에 진흙을 발라 자기에 미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갈량 앞에서만 경국지색에 미모를 들어냈다고. 어쨌든 뛰어난 제갈량의 지모에 탁월한 ‘현모양처’는 그야말로 천하에 길이 빛날 천상배필임에 의심할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