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 전우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인생에 대한 회의감과 어릴적 십자가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의 그리움이, 내가 교회에 대해 선한 마음을 갖게하는 동기가 되었다. 교회에 나오는 것과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나는 교회에 나와서도 오랜 세월 후에 하나님을 영접했다. 구원의 십자가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나의 국민(초등)학교 시절이었다. 4,5,6학년을 부산에서 공부했다. 당시는 6.25전란 중이었고 내가 다니던 피난 국민학교는 영주동 박가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다. 미군들이 쓰던 군용 천막이 소년들의 교실이었고, 눈앞에 펼쳐진 산언덕이 우리의 운동장이었다. 나무와 풀꽃, 산새들이 소년들의 친구였고 바람까지도 우리의 친구였다. 그곳은 어린이들의 꿈의 동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