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주님의 행적(무화과나무가 마르다. 화요일). 마 21:18-22.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성전정화 사건을 행하시고 다음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다. 그런데 병행구인 막 11:12-14, 20-24절에 의하면 이틀 동안 이루어진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다(마가는 시간적인 순서로 마태는 사건의 연관성을 토대로 교훈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열).
무화과나무는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대로 말랐다(막11:20절에 의하면 제자들이 무화과 나무가 마른 것을 발견한 것은 화요일 아침이었다). 그 때 제자들은 “이상히 여겨 이르되 어찌하여 말랐나이까?” 질문한다. 그렇다. 예수님의 행동은 기이하다. 뜬금없이 무화과나무와 시비를 걸어 저주하시고 마르게 하시는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 왜 이런 행동을 하셨을까?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맺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있는 4월부터 10월까지 모두 다섯 번 정도의 열매를 맺는다. 이 때 처음 맺히는 열매를 ‘파게’라 하고 이후 순차적으로 맺히는 열매를 ‘테헤나’라 한다.
막 11:13절을 보면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라 한다. 즉 ‘테헤나’의 때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파게’를 기대하셨던 주님은 열매가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성전 사건’과 같이 제자들에게 영적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호 9: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무화과나무에 처음 맺힌 열매(파게)를 보는 것 같이 여겼지만(한 없이 기쁜 마음) 그러나 그들은 우상에게 자신을 바치며 우상과 같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에 열심을 내어 더 많은 제단을 쌓았다(호 10:1). 즉 하나님은 낮고 천한 이스라엘을 불러 언약을 주시고 언약의 나라로 세우시기를 원하셨으나 그들은 이방나라 사람들과 같은 행동을 취하였다(다시 성전사건을 보라. 성전의 기능은 없고 오직 시장과 같은 즉 물질을 추구하는 삶이 바로 타락이라는 의미다) 그것이 바로 열매 맺지 못한, 잎만 무성한 이스라엘의 현 상태다.
그러므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아 마른다는 것은 언약에 실패한 이스라엘이 받는 심판의 모습이다. 더불어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오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마치 무화과나무과 같은 그들을 대신하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대신 받음으로서 참 무화과나무(열매 있는)로 만들어 내시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며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었고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신 저주와 심판의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 그 때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혜가 말할 수 없는 놀라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오늘 하루 무화과나무를 묵상하며 지내보자. -정원 교회 카페에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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