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목회 초년기를 그려봅니다. 전라도 정읍에 소재하고 있는 개척교회 부임하였을 때 일입니다. 그 교회를 개척한 동료 목사가 학업을 위해 개척 한지 일 년 만에 서울로 올라가게 되어 후임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전임 목사의 설명으로는 서울에 있는 대형교회와 사업을 하시는 기업인으로부터 선교 후원을 받고 있으니 개척교회라도 목회활동과 교회 살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생후 6개월 된 아들과 아내와 함께 힘차게 목회지로 향했습니다.
젊은 혈기에 열심을 다하여 목회에 정진했습니다. 그런데 부임한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건만 선교 후원을 한다는 교회와 기업인으로부터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비상금도 바닥이 나서 아이 우유를 사 먹일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다급해진 마음에 기차를 타고 선교 후원 처를 찾아갔습니다. 교회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식품제조업을 하시는 집사님께서 고향인 정읍에 교회 개척을 위해 개인적으로 선교 후원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집사님계신 곳을 수소문하여 찾아갔습니다. 집사님께서는 식품 제조업을 하시다가 사업의 어려움이 있어서 사업을 접으시고 모래네 시장 한 귀퉁이에서 작은 상점을 하고 계셨습니다. 누가 봐도 어려워 보이는 형편이었습니다. 선교 후원금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드리지 못한 채 사업장을 위하여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습니다. 사역지로 돌아온 저에게 교회 건물주인이 찾아왔습니다. 평소에 저희 가족에게 다정하게 잘 대해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시던 주인아주머니께서 민망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월세를 올려 받아야 되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교회건물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 찾아 다녀야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정읍은 소도시라 번듯한 건물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엎친데 겹친다고 사택도 옮겨야 하는 실정에 놓였습니다. 하루는 복덕방(부동산중개소) 아저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상평동이라는 곳에 셋집이 하나 났는데 가서 보겠느냐는 연락이었습니다. 상평동은 정읍에서 조금 돌아앉은 외곽 지역으로 철거민들이 이주해서 살고 있는 신생 마을이었습니다. 아저씨가 소개한 집은 마당이 아주 넓은 이태리식 주택이었습니다. 방3개에 부엌과 거실이 있고 다락방이 있었는데 약 25명 이상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습니다. 그 지역에는 아직 교회도 없고 다락에서 교회로 모이면 될 것 같아 계약을 했습니다.
그 집 주인은 초등학교 교사셨는데 경기도로 영전하시게 되었고 그곳에는 사택이 있어 이집을 전세 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사 날짜가 급해서 먼저 이사를 들어가 함께 한 달간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집살 것을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형편에 살수 없다고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는 이자 없이 나누어 갚으라고 하시면서 집 명의를 넘겨주었습니다. 그야말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학생들이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대부분의 교인이 학생, 청년, 주일학교 , 병약한 성도들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 가운데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 이로 말미암아 많은 환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한 가족같이 밥을 지어 먹으며 지냈습니다.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짠지가 고작이었습니다. 큰 밥솥에 밥을 하여도 순식간에 밥통을 비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쌀통에 쌀이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새벽예배를 끝내고 사택으로 들어가려는데 자전거를 끌고 한 신사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그 분은 이웃 마을 사시는 집사님이신데 새벽 예배 시간에 환상을 보았다고 하십니다. 환상에 이 동네 십자가가 보였고 쌀통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라고 보여주신 것으로 알고 쌀을 자전거에 실고 오신 것입니다.
목회 초년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 시절을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감사함이며 뜨거운 감동으로 가슴이 뭉클합니다. 지난 주 자녀의 학비를 위해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루된 한 목사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내일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어떤 인간적인 계획이나 욕심도 없이 하루하루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전하게 목회했던 초년 시절을 되새기며 겸허한 마음으로 신앙의 옷깃을 여며 봅니다.
-남미 선교원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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