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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 노벨상 수상자 페터 춤토르 - 경기화성 성지에 작은 기도공간

배남준 2019. 3. 11. 08:31



'건축가들이 존경하는' 건축가
지역의 특성·역사 담은 건물로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 받아


페터 춤토르


"화상 연결 아니야? 진짜 온다고?" 세계적인 건축가의 등장을 앞두고 객석이 술렁였다. '건축가들이 존경하는 건축가'로 꼽히는 페터 춤토르(75·작은 사진)가 9일 대전시립미술관을 찾았다. 한국에서의 첫 건축물로 경기 화성 남양성모성지에 작은 경당(천주교 기도실)을 짓고 있는 춤토르는 이날 선승혜 관장과 대담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대담에 앞서 그를 만났다.

춤토르는 "유럽식이 아닌 한국 전통의 방식으로 차를 한 잔 마시며 기도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서 "한국의 박물관에서 봤던 산수화 속 정자 같은 건물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5~20명이 들어가는 규모로 차를 마실 수 있는 '티 채플(Tea Chapel)'을 구상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만들어진 적 없는 구조다. 가는 나무 기둥 여러 개를 십자 모양으로 겹쳐서 지붕과 바닥을 만들고 사이사이에 기둥을 넣는다. 한국 전통의 색으로 칠한 기둥은 로프로 엮어서 바람이 불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도록 설계했다."

스위스 알프스의 작은 마을 홀덴스타인에서 활동하던 춤토르는 2009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도 상업적 건축을 거부하고 인터뷰나 강연 등 외부 노출을 꺼려 한때 '수도승'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춤토르는 이날 인터뷰 중 수원 화성을 설계한 정조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물었다. 그는 고은문학관을 지으려던 부지에 세워질 인문예술복합공간을 설계 중이다. 전날에도 수원 화성을 산책했다는 그는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주위와 단절된 낙원 같은 공간이 떠올랐다"면서 "땅에 구멍을 파서 물을 채우고 큰 연못을 만들겠다고 했더니 정조가 꿈꿨던 화성의 모습과 비슷하다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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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춤토르의 대표작인 스위스 발스 지역의 온천탕. 이 지역에서 나오는 규암 6만여 개를 켜켜이 쌓아 고요하면서도 묵직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플리커·연합뉴스


돌과 흙, 나무 등 소박한 재료를 이용해 지역 고유의 특성과 역사를 담아내는 건축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인 스위스 발스 지역의 온천탕은 마을 채석장에서 얻은 규암 6만여 개를 쌓아 올렸고, 독일의 '콜롬바 박물관'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맞았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 채 그 위로 건물을 지어올렸다.

춤토르의 건축 철학을 함축하는 단어는 '분위기'. 그의 건축에선 고요하면서도 묵직한 분위기가 흐른다. "분위기는 내 건축의 모든 것이다. 건물의 모양부터 그 안의 소리와 온도, 태양 빛을 반사하고 그림자로 어둠을 조절하는 건물의 재료 하나하나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내가 읽었던 모든 책과 인생의 모든 경험을 동원해 분위기를 느끼고, 머릿속에 영화관처럼 생생하게 공간의 이미지를 재생한다"고 했다. "일이 없는 토요일 아침엔 신문을 펼쳐 문화면을 읽다가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나는 24시간 일하는 셈이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일이기도 하고, 휴식이기도 하다."

이날 열린 대담은 춤토르를 만나러 온 건축학도들과 시민 300여 명으로 붐볐다. 신청자들이 몰려 미술관 사이트가 마비되고 일본·독일에서까지 문의 전화가 올 정도였다. 춤토르는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어떻게 상업적인 건축을 피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한국 건축에 예술을 접목할 수 있는지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돈이나 명예를 원하지 않았다. 좋은 차, 좋은 집을 원한다면 어떻게 좋은 예술을 할 수 있겠나."

                                                                                                                                  -조선일보 2019.3.10일 기사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