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교회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조선에서 만주로 오가며
인삼장사를 하던 25세의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열병에 걸려 생사의 귀로에 놓였을 때
지극 정성으로 돌보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로스와 맥킨 타이어 선교사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을 통해 청년은 복음을 받아들였고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게 되었으며 이 성경을 들고 고국으로
귀환하지만 국경검문소에서 발각되어 투옥되고 만다
하지만 평소 친분이 있던 관리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하여 의주로 돌아와 전도 활동을 벌리지만 박해는
계속 되었고 끝내 황해도 장연에 근거지를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한국 최초의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1883년경 소래마을 한구석에 초가집으로 지은
조그마한 교회가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이며
기점이 되었던 인물의 청년은 “서상륜”이다
이 교회는 비록 목회자도 없었지만 최초의
신앙 공동체로서 정기적인 예배가 드려졌던 곳이다
당시 서양 선교사들은 정부로부터 제약도 많았지만
바로 이곳에서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배우고
어학 훈련을 할 수 있었으며 아펜젤러, 게일, 마펫
등의 선교사들이 이곳을 통해 한국을 체험했던 것이다
서상륜이 동생 서경조와 함께 소래에서 교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그 곳에는 20여 명의 개종자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언더우드 선교사는 직접 이곳을 방문해
서경조의 아들에게 최초의 유아세례를 주기도 했다
동학난과 청일전쟁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진 때에
교회는 더욱 부흥하여 매주일 8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예배당의 재건축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외국 선교사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교인들은 정중히 거절했다
결국 그들의 힘으로 교회를 건축하게에 이른다
교인들이 직접 곡식을 내고
부역을 하고 나무를 베어 재목을 대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1895년 기와집 8칸 짜리
예배당이 완성되었으며 바로 이 소래교회를 거점으로
인근 지역에서 수십 개의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그 뿐 아니라 멕켄지 선교사와 서경조에 의해 세워진
제일교회에서는 세브란스 전 원장 김명선을 비롯
김마리아, 김필순 등의 여성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이렇듯 우리의 힘으로 지어 기독교 역사상 큰 획을 그은
소래교회는 해방 후 공산 정권에 못이긴 교인들이
남한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소식이 끊기고 만다
현재는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의
총신대 대학원에서 소래교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1988년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된 것이다 이곳 마당에는 일제시대
예수천당을 외치던 최권능 목사의 기념비가 세워져있기도 하다
月刊 좋은생각에서 착한사슴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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