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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주기철 목사님 마지막 설교

배남준 2018. 7. 17. 22:41

주기철목사 순교와 생명의 부르짖는 설교

  -주기철 목사와 오정은 사모 - 


순교자 주기철목사님의 설교문 
1939년 2월 첫째 주일 

나는 지난 7개월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특별히 다섯 가지 종목을 들어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 시간 그 기도의 내용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들 앞에 ‘다섯 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바야흐로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검은 손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나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만물이 다 죽음 앞에서 탄식하며, 무릇 숨쉬는 인생은 다 죽음 앞에서 떨고 슬퍼합니다. 죽음이 두려워 의를 버리며 죽음을 면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죽음이 두려워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를 부인하고 계집종 앞에서도 모른다고 맹세하였으니, 누가 감히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장담합니까?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열백번 죽음은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백년, 천년 산다 한들 그 무슨 삶이리오!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께 욕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이 몸이 부셔져 가루가 되어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시옵소서.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쏟으셨습니다. 주님 나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이 무서워 주님을 모르는 체 하오리까? 다만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 속에서 3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 사망의 권세를 죽이신 예수여! 나도 부활을 믿고 사망의 권세를 내 발 아래 밟게 하시옵소서. 죽음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는냐?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나도 부활하리로다. 소나무는 죽기전에 찍어야 시푸르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세례 요한은 33세, 스테반은 청장년의 뜨거운 피를 뿌렸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의 제단에 제물이 되어지리다. 


         둘째, 장기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한두 번에 죽어 진다면 그래도 이길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일 년, 십년, 계속되는 고난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절대 면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할 수 없이 당하지만, 한 걸음만 양보하면 그 무서운 형벌을 면하고 도리어 상을 준다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말 한 마디만 타협하면 살려 주는데, 용감한 신자도 넘어지게  됩니다. 하물며 나같은 연약한 약졸이 어떻게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어 배기겠습니까? 다만 주님께 의지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 십자가! 오직 내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께서 ‘너는 내 이름으로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 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께서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 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오리까?


         셋째,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내게는 팔십을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아들로서의 의무도 귀중하고 가장, 아비 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자식을 아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어머님이 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우시고 가르치신 은혜 태산같이 높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님의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어머님이 금지옥엽으로 길러 주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 맞아 상할 때, 내 어머님 가슴이 얼마나 아프셨을꼬! 춘풍추우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 고요한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 때, 어머님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을 봉양한다며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을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던 주님 심정 어떠 하셨을꼬?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한 주님께 나도 내 어머님을 부탁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도 주님의 자취를 따라가렵니다. 나의 병든 아내도 주님 손에 부탁하는 것이 이 못난 사람의 도움보다 좋을 줄 압니다. 나의 어린 자식들을 자비하신 주님품에 두는 것이 변변치 못한 아비의 손으로 기르는 것보다 복될 줄 믿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양떼도 선한 목자 주님께 부탁합니다. 악하고 험한 세상에 양떼를 두고 가는 이 내 마음 차마 못할 일이오나,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주님께서 지켜 주실 줄을 믿사옵니다.


         넷째,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우상 때문에 정절을 잃어 버리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서 예수 안에서 자랐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 번 맹세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오늘, 이 몸이 어찌 구구도생 피할수가 있사오리까?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 동방에 내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세에 흐르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아무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으사이다.


         다섯째,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에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나 내 목숨 끊어질 때에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 나라는 나의 고향이로소이다.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 황금길을 걷게 하옵시고, 죄악 세상에서 부대끼던 나를 깨끗케 하사 영광의 조건에 서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주께 부탁하나이다. 아멘. 


*이 설교는 주목사님이 의성 경찰서에서 7개월 간 죽음과도 같은 모진 고문을 당하다 풀려난 1939년 2월 첫째 주일, 임박한 당신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당신의 시무하던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이후 다시1938년 10년 형을 선고받은 주기철 목사님은 투옥 6년째인 1944년, 따뜻한 숭늉 한 그릇을 마시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차가운 감방에서 옥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신사참배를 인정해 우상숭배를 묵인했던 모든 한국교회와 달리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순교하신 주목사님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정통성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주기철 목사(朱基徹 1897~1944)

주기철(朱基徹, 1897년 11월 25일 ~ 1944년 4월 21일)은 한국의 장로교 목사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여 일제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순교했다.

1936/ 평양 산정현교회에 초빙목사로 부임함.
자기 희생을 통한 신앙실천을 강조하는 일사각오(一死覺悟)설교로
기독교 신앙실천과 배일사상 그리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면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함.

1938/ 4월 신사참배 강요를 반대하다가 1차 검속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6월 풀려났다.

1938/ 8월 제2차 검속에 체포되었다가 1939년 1월 풀려났다.

1939/ 10월 제3차 검속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1939/ 12월 19일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 신사참배 결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기철 목사를 목사직에서 파면.

1940/ 2월 산정현 교회에서 ‘다섯 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주제로
마지막 설교를 하다.

1940/ 9월 제4차 검속으로 신사참배 반대자들을 일시에 검거할 때 함께 체포됨.

1944/ 복역 중 고문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옥사함.

1963/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창골산 봉서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