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다
마르틴 루터는 중세교회가 수행과 고행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잘못된 관행에 맞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에 능력이 있음을 선포했다. 독일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루터의 초상화(1582년). 국민일보DB
생명을 살리는 복음적 설교가 한국교회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지 않는 것이다. 그 원인은 어디에서 왔을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배운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지도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는다. 신학교라고 해서 별반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신학이론을 가르친다면서 유명 신학자들의 이름을 줄줄 나열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를 알고 닮아가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성경보다 신학을 앞세우는 교회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성경은 인간 구원과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 완전한 답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성령도 함께 일하신다. 그곳엔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성경보다 전통을 앞세웠다. 그래서 잘못된 길로 갔다. 그 결과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역사가 사라졌다. 이는 교회의 타락을 야기했다. 이런 잘못을 바로잡고자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쳤다. 성경을 신앙과 삶의 절대적 기준으로 고백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이처럼 성경을 중시하고 가르칠 때 교회에 복음의 능력이 회복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개혁주의 신학을 전수받은 현대교회는 신학 체계와 교리를 새로운 전통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을 성경보다 앞세우면서 중세교회와 유사한 잘못을 범하게 됐다. 중세교회가 성경보다 전통을 우위에 둔 것이 문제였다. 현대교회도 성경보다 국내외 신학대와 신대원에서 배운 신학과 교리를 우위에 두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새로운 전통으로 성경을 강단에서 밀어낸 것이다.
이처럼 말씀보다 신학을 먼저 붙드니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잃게 됐다.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래서 건전한 신학 전통을 익히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강단에선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해야 한다. 생명의 복음으로 선포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 말씀을 인간 기준으로 판단 말아야
생명을 살리는 복음적 설교가 한국교회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지 않는 것이다. 그 원인은 어디에서 왔을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배운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지도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는다. 신학교라고 해서 별반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신학이론을 가르친다면서 유명 신학자들의 이름을 줄줄 나열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를 알고 닮아가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성경보다 신학을 앞세우는 교회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성경은 인간 구원과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 완전한 답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성령도 함께 일하신다. 그곳엔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성경보다 전통을 앞세웠다. 그래서 잘못된 길로 갔다. 그 결과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역사가 사라졌다. 이는 교회의 타락을 야기했다. 이런 잘못을 바로잡고자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쳤다. 성경을 신앙과 삶의 절대적 기준으로 고백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이처럼 성경을 중시하고 가르칠 때 교회에 복음의 능력이 회복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개혁주의 신학을 전수받은 현대교회는 신학 체계와 교리를 새로운 전통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을 성경보다 앞세우면서 중세교회와 유사한 잘못을 범하게 됐다. 중세교회가 성경보다 전통을 우위에 둔 것이 문제였다. 현대교회도 성경보다 국내외 신학대와 신대원에서 배운 신학과 교리를 우위에 두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새로운 전통으로 성경을 강단에서 밀어낸 것이다.
이처럼 말씀보다 신학을 먼저 붙드니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잃게 됐다.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래서 건전한 신학 전통을 익히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강단에선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해야 한다. 생명의 복음으로 선포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 말씀을 인간 기준으로 판단 말아야
루터는 1519년 독일 플라이센부르크성에서 열린 라이프치히 토론에서 로마교황청을 향해 “오직 성경만이 신앙생활의 규범이므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터가 500년 전 ‘오직 성경’을 외쳤던 그 자리엔 라이프치히 시청이 들어섰다. 국민일보DB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책이다. 계시란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진리를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벧후 1:20) 여기서 예언은 하나님의 계시를 말한다. 예언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하신 것은 왜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강단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선포하면서 “모세가, 바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모세가, 다윗이, 바울이 이 부분을 썼다”고 말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만일 성경 저자가 단지 인간 모세, 인간 다윗, 인간 바울이라면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겠나. 어떻게 계시가 될 수 있겠는가.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노라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1∼2)
무슨 말인가. 여호와의 영이 다윗을 통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다윗의 입은 성령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일 뿐이다.
영혼을 메마르게 하는 인간의 학문
그런데도 신학교 교수들은 오늘도 “모세가, 다윗이, 바울이 말했다”고 가르친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똑바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학자들 밑에서 신학을 배운 신학생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이 훗날 목회자가 되면 과연 성경을 100% 하나님의 계시로 선포할 수 있을까. 이런 현상이 반복되다 보니 강단에서 아무리 말씀을 선포해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책이다. 계시란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진리를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벧후 1:20) 여기서 예언은 하나님의 계시를 말한다. 예언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하신 것은 왜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강단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선포하면서 “모세가, 바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모세가, 다윗이, 바울이 이 부분을 썼다”고 말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만일 성경 저자가 단지 인간 모세, 인간 다윗, 인간 바울이라면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겠나. 어떻게 계시가 될 수 있겠는가.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노라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1∼2)
무슨 말인가. 여호와의 영이 다윗을 통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다윗의 입은 성령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일 뿐이다.
영혼을 메마르게 하는 인간의 학문
그런데도 신학교 교수들은 오늘도 “모세가, 다윗이, 바울이 말했다”고 가르친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똑바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학자들 밑에서 신학을 배운 신학생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이 훗날 목회자가 되면 과연 성경을 100% 하나님의 계시로 선포할 수 있을까. 이런 현상이 반복되다 보니 강단에서 아무리 말씀을 선포해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라이프치히 토론을 주관했던 라이프치히대 전경. 국민일보DB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과 계시를 인정하지 않는 신학자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그들의 교만은 한국교회 강단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성도들의 영혼을 메마르게 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이 말씀을 그대로 옮기자면,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온전히 믿을 때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성경에서 시작됐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사경회로 모였다. 성경을 읽을 때 영적 각성이 일어났다.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다. 신앙 선배들은 오직 성경 한 권만 부여잡았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몸부림쳤다. 주석이나 변변한 신학서적도 없던 시절에는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수십 번씩 성경을 읽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몸부림쳤다.
설교는 하지만 목회는 못하는 신학자
그런데 신학이 발달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목회자들이 성경보다 인간의 지식을 더 의지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신학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기보다 자신이 배운 신학 지식을 전달하는 데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한국교회 강단이 힘을 잃고 말씀의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신학자들은 설교는 할 줄 안다. 그런데 대다수가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지는 못한다. 왜 그럴까. 목회는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목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며 복음을 있는 그대로 선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학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학문을 우선시하고 그걸 지식으로 가르친다. 그렇다 보니 생명력 있는 목회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과 계시를 인정하지 않는 신학자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그들의 교만은 한국교회 강단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성도들의 영혼을 메마르게 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이 말씀을 그대로 옮기자면,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온전히 믿을 때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성경에서 시작됐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사경회로 모였다. 성경을 읽을 때 영적 각성이 일어났다.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다. 신앙 선배들은 오직 성경 한 권만 부여잡았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몸부림쳤다. 주석이나 변변한 신학서적도 없던 시절에는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수십 번씩 성경을 읽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몸부림쳤다.
설교는 하지만 목회는 못하는 신학자
그런데 신학이 발달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목회자들이 성경보다 인간의 지식을 더 의지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신학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기보다 자신이 배운 신학 지식을 전달하는 데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한국교회 강단이 힘을 잃고 말씀의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신학자들은 설교는 할 줄 안다. 그런데 대다수가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지는 못한다. 왜 그럴까. 목회는 지식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목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며 복음을 있는 그대로 선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학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학문을 우선시하고 그걸 지식으로 가르친다. 그렇다 보니 생명력 있는 목회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장종현 목사
신학자 중 다수가 성경을 사회·문화적 배경을 지닌 하나의 역사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세나 다윗, 바울이 썼다고만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쓰신 것이고, 바울을 통해 쓰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다윗, 바울을 통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성경은 사람이 쓴 역사책이나 문학책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바로 복음이라는 말이다. 목회자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온전히 믿고 선포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삶과 교회, 사회, 민족, 국가 위에 예수 생명이 넘친다.
국민일보 -장종현 목사(백석대 총장)
신학자 중 다수가 성경을 사회·문화적 배경을 지닌 하나의 역사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세나 다윗, 바울이 썼다고만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쓰신 것이고, 바울을 통해 쓰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다윗, 바울을 통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성경은 사람이 쓴 역사책이나 문학책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바로 복음이라는 말이다. 목회자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온전히 믿고 선포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삶과 교회, 사회, 민족, 국가 위에 예수 생명이 넘친다.
국민일보 -장종현 목사(백석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