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창조과학

나는 왜 젊은 지구론을 지지하게 되었나?

배남준 2018. 4. 3. 04:34



두 세계관의 충돌 – 나는 왜 젊은 지구론을 지지하게 되었나?



두 ‘세계관’의 충돌

저의 글들을 관심있게 읽어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젊은 지구 창조론자입니다.  저는 과학 전공자도 아니고, 말주변도 없고 사실 과학 얘기를 그닥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글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성경을 나누고 싶고 복음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젊은 지구 창조론을 파수꾼의 심정으로 나팔을 불듯 외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진정한 과학적 발견과 관찰들이 젊은 지구를 증거하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경의 시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냐에따라 성경을 보는 관점은 물론, 하나님의 성품,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까지도 그 뿌리가 흔들리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만 믿으면 되나요? 예수님만 믿으면 되나요?

혹자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만 믿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이렇게 반문해 보고 싶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되나요?”

예수님이 우리가 기도만하면 많은 돈과, 부와 명예를 주시는 분, 바라는 소원은 무엇이든 들어주시는 분,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으니 우리는 아무렇게나 죄짓고 살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 것도 괜찮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 점도 보러 다니고, 굿도 하면서 지내도 괜찮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잘못 해석함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만 믿으면 되나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를 믿느냐에 따라, 내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이단적인 믿음, 즉 복음의 근간을 훼손하고 왜곡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 사다리 타기여러분은 사다리 타기라는 게임을 아실 것 입니다. 벌칙이나 술래 등을 정하기 위해서 중간 사다리가 어떻게 내려가는지 모른 채 일단 하나의 시작점을 선택한 다음, 가려놨던 사다리 길을 열어서 따라 내려가다보면 그에 따른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유신 진화론과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

창조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창조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선택할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른채 그냥 별 문제 없겠거니 하고 시작할 수 있지만, 그 선택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유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여러분은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가 실존 인물이라는 가정을 버리게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적으로 두 명의 인간만 존재했던 시기가 없었기 때문이며, 인간이 영생 할 수 있었던 시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죄를 부정하도록 만듭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첫 사람 아담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죄가 들어 왔고, 죽었다고 반복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로마서 3:10, 5:12~14, 고린도전서 15:22). 그런데 아담과 이브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혹은 아담과 이브를 인정하더라도 당시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았다고 주장한다면, 아담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죄가 들어왔다는 말씀에 모순이 생기며, 모든 사람이 죄인이어야 할 이유도, 또 아담말고 죄를 짓지 않았던 당시 다른 사람들이 죽었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원죄가 없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 대속해야 할 이유도 없게 됩니다. 원죄가 없다면,  우리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충분히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인데(able not to sin),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까?

이에 대해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유신 진화론자 Joseph Bankard는 대진화는 타락과 원죄의 교리에 의문을 갖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결국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으러 오신게 아니라, 우리에게 인간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라고 주장 1  하기에 이릅니다.

즉, 하나님이 십자가를 계획하신 것이 아니며, 예수님은 죽기위해서 이 땅에 오신게 아니고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완벽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오셨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까? 이것은 비성경적인 것을 떠나서 이단 교리 입니다.

당신의 교회가 신천지의 교리를 가르친다면?

물론 이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신 진화론자들도 있을것 입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Joseph Bankard와 같은 신학자의 글을 게재하고 있는 바이오로고스에 대해 이렇게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이글을 읽고 계신 모든분들은 신천지가 이단이란 것에 동의하실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에서 신천지의 이만희는 재림 예수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놓고는 담임 목사님이 “여러분 저는 이 글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시고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아 공유합니다.” 라고 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저는 몇년전만 해도 젊은 지구론자가 아니였습니다. 처음 이 사역을 시작하였을때만해도 저는 무신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싶었지, 이렇게 기독교내에서 되레 복음을 변호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언젠가 한 무신론자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분의 대화속에서 저는 크리스천이 어떤 믿음의 사다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성경, 그리고 복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놓고 많이 기도한 끝에 보잘것없지만 저는 지금 이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가운데 서 있습니다.

오랜 지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순됩니다

46억년이란 연대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 둘은 반드시 충돌합니다. 지구가 46억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 연대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연대를 구성하는 지질과 지질에 있는 화석 기록과 그 화석 기록에 대한 해석도 필연적으로 함께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트로이의 목마처럼 “난 세상이 얘기하는 46억년 하나만 받아들인거야” 라고 말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성경을 공격하고 변개시키는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받아들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렇게 트로이의 목마를 맞이하게 되면, 인간이 출현하기도 전에 지구상 생물의 90%를 멸종시키고 창조와 멸종을 수십억년 동안 반복하시고는, 아담의 원죄와 타락이 있기도 전에 이미 죽음과 저주가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진화론하나님을 배제하는 철저한 자연주의에 입각한 ‘세계관’으로 자리를 잡았고,‘세계관’이 창세기와 충돌을 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이 그 안에서 갈팡질팡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중세시대 과학은 지동설을 주장했는가?

왜일까요? 어쩌면 기독교가 과거에 말씀을 통해 저질렀던 실수가 있었기에 지레 겁을 먹고있지는 않은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중세 시대 있었던 천동설 vs 지동설 논쟁을 들 수 있습니다. 교황청은 성경 말씀을 앞세워 과학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를 핍박했지만 결국 이 후 과학의 발전이 지동설이 정확했음을 확인하자, 사람들은 이를 과학에 대한 신학의 패배로 규정하기 시작합니다.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관념이 우리 생각을 지배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는 철저한 오해로 인한 잘못된 결론입니다.  중세에는 천동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론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사용 가능했던 관찰 도구로는 모든 증거들이 천동설을 지지하였고 로마 교회는 당시 과학적 관찰에 부합하고 그 어느 이론보다 대세였던 천동설을 승인하여 공식적으로 지지했던 것이었습니다.

갈릴레오의 시대에 과학적 관찰을 바탕으로 지동설을 주장한 과학자는 셋 밖에 없었습니다. 약 100년 전에 살았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그리고 요하네스 케플러 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주류 과학은 교황청과 마찬가지로 천동설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즉 갈릴레오 사건의 깊숙한 뿌리는 과학과 신학의 대결이 아니었다는 것 입니다. 당시 과학이 버젓이 천동설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과학’이라 말함은 누구를 얘기하는 것일까요?

천동설 vs 지동설 사건은 과학과 신학의 대결이 아니라, 어떠한 관찰을 가지고 있으며,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금은 지동설이 더 발전된 과학을 통해서 입증된 사실이지만 당시에 갈릴레오는 다른 과학자들로 부터의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없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태양이 중심에 있는지 지구가 중심에 있는지의 여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본질은 뒤로한채, 과학 주의에 빠져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화론을 무비판적으로 승인해주고 이에 맞춰 변개된 복음과 신앙을 급속히 형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창세기 1장~11장은 어느새 고대 근동의 설화가 되어 버립니다.

첨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보이는 선택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해 버릴 수 있습니다. 유신 진화론을 창조의 방법으로 선택하면, 말씀은 조금씩 조금씩 재해석되고 변개되어 결국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와 십자가의 의미마저 바뀌어 버립니다.

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타협

이제 크리스천들에게는 선택이 생겼습니다. ‘창조의 방법’을 바꾸거나 ‘성경’을 바꾸거나…

창조 vs 진화 논쟁에 관심이 있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두 가지 모두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창조의 방법을 바꾸기에는 현대 과학이 너무 확실 한 것 같고, 성경을 바꾸자니 신앙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과학을 믿되, 성경에 모순을 만드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만 과학을 부정하고 성경을 믿는 방법 을 택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최악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과학의 ‘진화론적 세계관’과 사고 방식을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간다면, 성경을 위해 선택한 여러 예외 사항들은 결국 다시 모순이 되어 돌아와 ‘성경적 세계관’을 위협하고 장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과 바알을 같이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난 하나님도 섬겨요!”라고 괜찮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들은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멸망하게 됩니다.

실제로 저명한 과학철학자 마이클 루즈, ‘창조론자들’의 저자 로널드 넘버스, ‘종의 기원’의 찰스 다윈같은 경우, 이들은 모두 처음엔 창조주의 존재를 믿었었지만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난 이후 믿음을 잃고 모두 불가지론자가 되었습니다. 무신론자인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크리스천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여 유신진화론->불가지론->무신론의 순서로 최종 진화한 사례들은 우리 주위에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과학자들의 권위는 대단합니다. 다윈주의 패러다임안에서 쌓아온 엄청난 지식을 앞세워 그 어떤 의문, 의심도 들수없도록 주눅들게 하죠. 저같은 경우만해도 ‘그래도 과학자들이 뭔가 아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거겠지. 일단 과학자들이 얘기한거니까 맞다고 가정해야 하는게 아닐까?’하며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대에 대한 문제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넘어가곤 했죠.

창조는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하면 할수록 이것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류 과학과 성경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많은분들께서 창조 vs 진화의 문제를 지성과 이성을 사용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시지만 이 문제는 절대, 결코 내 지성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가장 우선적으로 영적인 문제이며, 이는 다시말해 ‘세계관’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과학적 증거들을 관찰하는가?

비유를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세 과학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던 세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이 세사람에게 창조 후 일곱째 날을 관찰할 기회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과학자들은 성령에 이끌리어 창조 후 첫 안식일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세사람이 지구를 둘러보니 7일 밖에 안되었는데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울창한 나무를 잘라보니 나이테가 800개나 있었고, 아담을 보니 아기가 아니라, 누가봐도 20살은 훌쩍넘긴 성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물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한 눈으로 봐도 한 쌍에서 시작했다면 일주일 안에는 절대로 번식될 수 없는 숫자였습니다. 연대 측정을 해보니 50만년에서 500만년 정도로 측정 결과가 나옵니다.

그래서 세 과학자가 하나님께 다시 물어봅니다. “하나님 저희가 지금 창조 7일째 있는게 맞나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세 과학자의 결론

그리고 첫번째 과학자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내가 보는 것은 분명히 수십년에서 수천년 정도 된 것 같은 세상이지만 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오늘이 7일째라고 믿겠다.”

두번째 과학자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농담을 하시는 걸거야. 일주일 만에 아담이 성인처럼 클 수는 없어, 난 관찰 결과에 따라서 창조 후 수백년은 지난 것이라고 믿겠어.”

세번째 과학자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하나님이 농담을 하신게 분명해, 난 연대 측정을 믿어. 관찰 결과 수백년 정도 지난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창조 후 500만년 정도는 되었어!”

이 세 과학자는 모두 동일한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와 해석의 방법,  관찰과 연대 측정 방법을 얼만큼 신뢰하는지에 따라 다른 결론을 짓습니다.

첫번째 과학자는 창조론자 입니다. 내 눈과 지성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과학자는 지금 대부분의 수십억년의 지구를 믿는 세속 과학자 입니다.

진짜 과학자는 두번째 과학자 입니다. 과학이라는 관점에서 사람의 지성으로는 그가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 맞지만, 그가 진리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크리스천에게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 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다는 통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혀를차며 이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불미스럽고 악한 일들 때문이라고, 또 세상이 너무 세속적이 되어서라고 하시는 것을 봅니다.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진정 믿는다면, 이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 못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 기독교인의 99%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악을 행하고,  상처를 준다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났다면 그 사람은 끝까지 그 어떤 시련과 핍박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못할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 빛이신 예수님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떠나갈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는 제대로 된 복음을 듣지 못하고, 무엇보다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가 어떻게 커다란 부흥을 경험할 수 있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고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온 지역에 두루 퍼지니라. <사도행전 13:48~49>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그들 중에 많은 사람이 믿고 또 그리스 사람인 귀부인들과 남자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이 그리하더라. <사도행전 17:11~12>

개인적으로 이 사역을 하며,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화론과 같은, 과학의 이름을 앞세운 거짓 주장들이 이들의 세계관을 흔들어놓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46억년의 지구를 주장하는 그 근거들을 조금만 자세히 조사해 보시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논리적 모순과 과학적, 철학적 오류가 존재하는지 쉽게 아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세속 과학의 ‘세계관’이 우리 믿음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46억년을 믿는 것은 ‘하나님은 없다’는 세속 과학의 세계관이 여러분의 믿음의 토대가 되어, 이 세상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과학자 밖에 없다는 신의 권위를 부여했기 때문이지,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거나 논리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세계관’은 어디에 기반이 되어 있습니까? 부디 성경위에 세워져 계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때에 온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높임 받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경외할 때에,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얻을 수 있을것 입니다.

References

1. John Bankard, Substitutionary Atonement, and evolution Part 2, 2015.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