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간증

백기현음대교수 55년 곱사등 치료받은 놀라운 간증글 (요약)

배남준 2016. 12. 27. 21:50

            백기현교수(성악가)_55년 곱사등이를 펴신 하나님




백기현 간증 글

저는(1951년생) 뜻하지 않은 사고로 2살(1952년)때 곱사등이가 되어서 50평생을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 오던중  

2005년 2월 4일 부흥회(장향희 목사님 인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새 사람이 되어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면서 감격의 글을 쓰게됩니다


- 출   생 / 1951년. 충남 공주 

- 학   력 / 서울음대 및 동대학원 성악과 졸업

               오스트리아 비인국립음대 성악과 수학

 - 현   재 / 국립공주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1980년부터 -)

               오페라 이순신 제작자(1997년 -)

               대전중앙감리교회 권사(1994년 -) 

    수   상 / 국무총리상(1995년)

                 - 광복 50주년 기념, 백제권 창작오페라 제작 및 공연

                    충청남도문화상(1998년)

                 - 오페라 이순신 초연공연

                     화관문화훈장(2002년)

                 

<간증글>

고난의 시절

  본인은 2살(1952년) 때, 8살 된 친척의 등에 업혀 높은 곳에서 떨어진 후 몸을 다친 후 척추골결핵 병으로 곱사등이가 되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71년도에는 24시간에 걸친 척추에 달라붙은 화농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면서 24시간 동안 투여된 12병의 수혈을 받는 동안에  침투한 B형과 C형 간염바이러스로 인하여 간염이 발생된 후 1994에 공무원 신체검사에서 발견된 간염질환을 치료받아왔으며, 선천적으로 오른쪽 눈까풀의 신경이 죽어 있는 안검하수(먼산바라기)를 지니고 살았습니다.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저는 열등감과 창피함을 감추기 위하여, 겉으로 성실하고 예절바른 척 하면서 태연하게 살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분노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교회에 처음 인도된것은 1968년,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장로님이셨고, 고등학교 음악선생님이셨던 분께서 제가 목소리가 좋다고, 저에게 노래를 가르쳐주시면서 찬송가도 가르쳤주셨고,  저를 교회에 인도하셨으며 제가 음악대학교 성악과로 진학 할것을 권장하셨습니다

   

 저는 학교생활이나 일상생활 그리고 교회생활에 정말로 많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책상이나, 바닥에 앉아서 수업을 받거나 예배를 드리는 일들이 저에게는 육체적으로 힘들었으며,  더욱 나를 어렵게 만든것은 뒤에서 남이 나를 보고있다는 사실이 늘 경계심을 가지게 만들었으며 날까롭고 예민한 모습을 나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남들이 운동을 할 때, 야유회를 갈 때  나는 그 자리를 피하여야 했으며,  항상 속으로는 고독을 즐기면서 어두운 사색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음대 1학년 때에는 몸이 너무도 아파, 지도교수님에게 마지막 편지를 드린 후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숙집에서 아침에 잠을 깬후 밥상에 가기까지 2시간이 걸리는 적도있었습니다.

 1971년 여름,  24시간에 걸친 척추수술을 하고나서, 1년 동안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에 2차례에 걸쳐서 호흡이 중단되는 죽음의 순간을 체험하기도 하였으며  더운 여름에 몸통을 석고로 기부스를 한 채 살았던 12개월은 정말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수술도중에 죽을수도 있으며, 살더라도 하반신이 마비될것이라고 했지만 하나님 은혜로 기적같이 수술이 잘되었습니다.

 1972년 퇴원 후 다시 복학하여 1976년에 서울음대 성악과를 졸업허였으며, 곧장 대학원까지 마치었지만 그동안에 등이 굽고 키가 적다는 이유로 학내음악회는 물론이고 외부의 여러 음악회 출연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겉과 속이 달랐던 삶

 사춘기가 들어 제가 제 모습을 발견한후 부터 저는 수치심을 갖게되었으며, 50여년을 살아오면서 저 만이 간직해온 수 많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저는 진정한 우정과 마음을 나누었던 친구가 없었으며,  친구들과 사귀다가 마음 깊이 우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에  저는 저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가 두렵고 싫어서, 어느 선에서 제 마음을 감추고  나에게 닦아오는 친구로부터 멀어지려고 친구에게 의도적으로 차가움을 마음을 표하기를 수도없이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저의 삶은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찼으며, 겉으로만 온유한 척 살아온 거짓된 것이었습니다.

 

 감사하지 못한 축복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저한 하나님으로부터, 수 많은 축복을 받았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의사선생님들은 1950년대에 결핵균이 몸속에 들어갔다면 백발백중 죽었을 터인데

어떻케 살았는냐고 묻고있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허락하신 좋은 부모님 덕분에,  죽음의 고비에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1971년도 24시간에 걸친 수술(척추속에 고인 화농을 제거)을 받으면서도 ,병원에서는 수술도중에 죽던가

살아도 하반신마비가 될수있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자비로 신경이 마비되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그후 저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27세의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가 되었고, 대학교수인 지금의 아내도 만나게 되었으며

교수가 된후에는 곧바로 국비지원으로 가족과 함께 2년간 해외유학을 혜택받는 등 여러가지 면에서 하나님 축복을 많이 받았지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내가 잘나서 다 그런것으로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성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으면, 내가 더 잘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원망하였던 죄인이었습니다.


내 자랑을 하던 오페라 이순신 

 일찍이 대학교수가 된후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열등감을 감추면서 위축된 삶을 살다가, 1991년부터 열등감을 가리기 위하여 인구 10여만 밖에 안되는 공주에서오페라단(성곡오페라단)을만들어 전국공연을 하면서 내 자랑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1998년부터 창작오페라 이순신을 만들어 한국, 이탈리아, 러시아에서 공연을 하면서 해외공연 업적을 자랑하면서 오페라를 우상처럼 여겼습니다

오페라 공연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 왜 저에게는 축복을 주시지 않으시냐고 불평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페라 이순신에 많은 축복을 주시어, 8년 동안(1998 - 2005) 90억에 가까운 돈을 모금하게 해주셨고

한국오페라 역사 최초로 이탈리아(2000년), 러시아(2003)공연을 허락하시었고, 이로 인하여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는커녕, 더욱 크게, 더욱 멋지게 잘 해보려고 130억 규모의 공연을 벌리고 혈기를 부리다가

10억에 가까운 빚을 남기고 행복하였던 가족의 행복을 다 망가트려 놓고, 죽음의 순간을 마지할려고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권면을 외면하였던 시절

 아내는 오페라를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기를 권하면서,올바른 신앙생활을 요구하였지만

저는 눈앞에 보이는 것이 오페라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오페라 이순신으로 인하여 많은 빚을 지고 나서도  “하나님 빚을 갚아주세요”만을 기도하였지

“하나님, 저의 불순종과 죄를 용서하여 주세요,

기도하지 못하고 시작한 저의 잘못을 용서하여주세요”를 간구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아내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목소리로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하였지만, 저는 “성악가가 어떻게 쉬운 찬송만을” 부를 수 있느냐며, 아내를 나무라기까지 하였습니다


 자살을 생각하였던 어리석음 

 많은 빚을 지고, 가족을 어둡게 해놓고 나서야, 저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지만 빚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부끄럽고 챙피하기까지 하면서 가족을 대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는 모든 후원자들도 제 곁을 떠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학교를 가도 동료교수나 학생들을 대하기가 부끄러웠으며 친구들을 만나기가 싫었습니다.

집에 가기가 어려워, 차안에서 잠을 자기도 하였으며, 차를 몰고 낭떠러지에도 가보았고 저수지 가에도 가보았지만 용기가 없어서 죽지를 못하였습니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

  2005년 2월 4일, 구정 기간, 햇살이 가득한 어느 날 아침, 저는 아내와 함께 방에 있었지만, 빚 문제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불편한 심정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편치않았고 빨리 집을 나가 혼자만이 있으려고, 조급함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내의 동료교수 한 사람이 아내에게 “최 교수 오늘 가까운 기도원에 부흥회가 있다는데 지금 투병중인 이 권사를 데리고 가자”라는 전화를 하였습니다

 아내는 전화를 끊고 친구인 이 권사에게 전화로 함께 부흥회에 가자고 하였지만, 이 권사는 “나는 오늘 병원의 정기검진이 있어 못가니 두 사람만 가라”고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말이 내 귀에 들렸습니다

  이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내에게  “내가 기도원에 가면 안돼?”라고 묻게 되었습니다.

평소 기도를 하라고 해도 거역하였던 나, 찬양을 하라고 해도 거역했던 나,

새벽기도에 나가는 아내를 방해하였던 내가, “내가 그 곳에 가면 안돼?”라는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날

 10%로도 않되었던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을 사랑하셨습니다


2005년 2월 4일, 하나님 치유시작

 목사님은 말씀을 증거하시면서 우리들이 주님앞에 마음을 열고 순종하게 인도를 하시면서 부흥회를 진행하시었습니다

 부흥회가 종반에 접어들면서 목사님은 우리들에게 성령님을 사모하면서 편안한 자세로 두려움 없이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았다”를 외치라고 하셨고, 저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랐습니다

 

   잠시 후 솜사탕 같은 것이,

아니 바람결 같은 것이 저의 오른쪽 옆구리를 누르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그것이 나의 착각에서 느낀 일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잠시 후 약간 더 세게 나를 누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나는 누가 나를 만졌나보다 하면서 주위를 보았지만

아무도 나를 만진 흔적이 없어서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은 내가 이렇게 몸이 불편해 지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종전보다 약간 강한 만짐이 있었는데

이때 저는 나도 모르게 “할렐루야 아멘”을 나지막하게 외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저의 자아가 외친 것이 아니고

그 어떤 것(성령)의 인도함에 의하여 제가 입을 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 입에서 “할렐루야 아멘”이 떨어진 후 곧바로 저의 팔, 다리, 고개, 어깨, 허리, 등이 제 뜻과는 달리 꺾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저는 50년동안 시리고, 저리고, 불쾌하였던 등줄기가 시원하여 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으나 저는 처음 겪는 일이라서 두렵기 그지없었습니다 제가 두려운 마음으로 잠시 정신을 차리려할 때에 “두려워 마라, 내가 너의 굽은 등을 편다”라는

하나남의 분명하신 말씀이 들렸고, 저의 몸은 다시 성령에 이끌리어 온 마다기 꺾이고, 비틀리는 현상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도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등의 시원함과 함께 굽은 등이 펴졌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호흡까지 동원하시면서 등을 피시면서

하늘에서 내린 하얀 빛이 저의 오른팔을 묶은 후 하늘로 당기셧습니다. 그리고 오른팔을 360도 회전을 시키시면서

그때에 생긴 팔의 각도를 이용하시어 등을 피시었습니다

 

 2005년 2월 5일, 새벽 6시. 내가 너의 등을 다 폈다

  부흥회 첫날이 끝나고 집에 와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메스껍고,

어지럽고, 현기증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971년도에 수술할 때 감염되어 1985년부터 치료를 받아온 간염이

갑자기 문제가 된 줄 알고 큰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페라로 인하여 생긴 빚에다가 아프기까지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면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두려워 마라 내가 너의 굽은 등을 다시 편다”라고 하신 후

저를 반듯이 뉘워 놓고 팔과 다리의 각도를 변화시키시면서, 령의 힘과 팽창된 호흡을 등 뒤로 밀어 넣으면서 계속하여 등을 펴주시었습니다.

   잠시 후, 하나님은 예리한 면도칼로 저의 정수리를 가르시고 ,검은색의 대못만한 쇠막대기를 뽑아주셨는데 이때 정말로 아팠습니다. 나는 너무도 아파서 “하나님 그만 하세요,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요”라고 외쳤는데, 이때 하나님은 저에게

 “예수가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아픔을 생각이나 해보았느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때 하나님께 너무도 죄송하여 “할렐루야 아멘”을 외쳤고,,이후 곧바로 저의 아픔은 모두 사라지고 하나님께서는 저의 머릿속에 있던 못을 두개나 뽑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저에게 “너의 죄가 무엇인지 아느냐”를 물으셨고, “잘 모르겠습니다”로 답하는 저에게

나를 너의 아버지라고 네가 네 입으로 외치지 않았느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 잘못했어요, 이제부터 하나님을 저의 아버지라고 제 입으로 부르겠어요”라고, 답을 하자만자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50년 동안 너무도 마음이 아팠구나, 이제 내가 너를 위로하노라” 하시면서 “나를 찬양하라,

그리고 널리 알려라”는 말씀과 함께 “자 이제 너의 굽은 등을 다 폈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새벽 6시, 눈물 코물로,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서 보니 정말로 굽었던 등이 펴졌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곧바로 옆방에서 자던 아내를 깨웠고, 아내도 나의 굽은 등이 없어진 것을 보고 절규에 가까운

“하나님이 함께 하셨어요”를 외쳤습니다. 그 날 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의 간염도 다 고쳤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새벽 4시, 방안에 상상 할 수 없는 큰 소리가 일었습니다.나는 전쟁이 난 줄 알고 발딱 일어섰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성경을 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에 저는 곧바로 성경을 폈는데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영과 혼과 골수와 뼈를 쪼개신다”말씀을 주셨습니다

  너무도 감사하도 가슴이 벅차, 집 앞에 있는 교회(대전중앙감리교회)에 나가

맨 앞자리에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는데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때 하나님께

왜 저의 등을 펴주셨어요, 하나님,

이 죄인이 무엇을 잘했다고 등을 펴주셨어요, 대답을 해주세요”,

를 수도 없이 외쳤는데,

하나님은 “나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노라”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정말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그동안에 어랴웠던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다 알고계셨지요?.

제가 그동안에 견디어 살아온것은 하나님 덕분이었습니다. 믿음은 적었지만 1968년이후 치유받기 전까지 의무적이라도 교회에 나갔고,

의심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기도하며 찬양을 부르며,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온 것이 저의 분노를 삭힐 수 있었던 것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저를 무척 사랑하셨어요. 제가 빚을 갚아달라고 기도하였을때

하나님은 저의 빚문제보다도 영적인 문제를 더 크게 사랑하셨아요. 기다려도, 기다려도 하나님께 가지를 않으니까,

굽은 등을 펴주시어 저를 회개시키시고 면화시킨 아버지, 정말로 감사해요

   

이제 하나님이 좋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저는, 저를 치유하시면서 당신을 찬양하라고 하신 나의 하나님께 순종하년서 감사와 영광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정말로 감동의 찬양을 할 것입니다.

찬양을 하면서 하나님이 “왜 저의 등을 펴주셨는지, 어떻게 펴주셨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만방에 알릴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ek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