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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의 어머니 100세, 홍은혜권사 -북 김일성 한때 교회 청년회장 인연

배남준 2016. 10. 1. 11:01

           "해군 첫 전투함 '백두산함' 부인들이 삯바느질로 마련한 거야"

             -   홍 은 혜권사  100년 세월을 회고하며-


      삯바누질 헌금으로 첫 전투함 '백두산함' 마련


영원한 ‘해군의 어머니’ 홍은혜(서울 해군교회) 권사는 올해 우리 나이로 100세다. 3·1운동과 광복, 6·25 한국전쟁 등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함께 살아온 역사의 주인공이다. 홍 권사는 평생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을 품고 살아온 해군과 해병대 창설의 주역 고 손원일(1909∼1980) 제독의 부인이다. 홍 권사는 매주 금요일 새벽,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기도를 드린다.  

손 제독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을 마련했으며,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는 등 국난 극복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전후 복구기에는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군 현대화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 군의 정신력 무장을 위해 군종제도를 도입했다.  

이런 손 제독 곁에는 늘 기도하는 홍 권사가 있었다. 홍 권사의 시아버지 손정도(사진)목사는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의장을 역임했다. 손 목사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독립운동가 김상옥이 다닌 동대문교회를 담임하기도 했다. 

국군의 날을 닷새 앞둔 지난 26일 낮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국민일보 빌딩의 한 음식점에서 손 권사를 만났다. 홍 권사는 전복죽 한 그릇과 후식으로 특별히 주문한 아이스크림, 믹스커피 한 잔을 아주 맛있게 비웠다. 연분홍 한복 저고리와 연초록 치마를 입은 100세 청춘과 1시간30분 동안 식탁 대화를 했다.

-100년 전 ‘은혜’라는 이름이 흔하지 않았을 텐데요.  

“1917년도 올 여름처럼 아주 더웠다고 하더라고요. 3개월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애간장을 태웠답니다. 그런데 제가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때 맞춰 하늘에서 단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비를 몰고 왔다고 해서 이름을 은혜라고 지었답니다(웃음).”

-시아버지 손정도 목사님은 어떤 분인가요.  

“기억에 남는 얘기가 있습니다. ‘비단옷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걸레는 하루만 없어도 집안이 엉망이 된다. 걸레와 같은 삶을 살더라도 불쌍한 우리 동포를 돌보겠다’고 하셨어요. 그분은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한다’고 강조하셨지요. 더불어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가 돼라’고 하셨죠.”

-북한 김일성과 손 목사님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과 평양 숭실중학교 동창이셨답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아버지가 죽고 그 수첩에서 손 목사님의 이름과 주소가 있는 것을 보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오갈 곳 없었던 김일성은 교회 청년회 회장으로 활동할 정도로 신앙심이 좋았다고 합니다. 후에 김일성은 회고록을 통해 손 목사님을 ‘생명의 은인’으로 표현할 정도로 존경했다고 합니다.” 

-‘해군의 어머니’라는 별칭은 어떻게 얻으셨나요. 

“해군부인회를 조직해 전쟁고아들, 해군병원 환자와 상이군경들을 위해 빨래해주고, 편지 써주고, 밥 먹여주고, 대변 보는 것까지 돌보는 일도 했는데 그래서 붙여준 이름이지요.” 

-배 한 척 없던 시절 전투함을 마련한 비화도 있던데요. 

“전투함 마련을 위해 다른 해군 부인들과 함께 삯바느질과 모금운동을 벌여 6만 달러를 마련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6만 달러를 보탰어요. 그래서 해군 첫 전투함 ‘백두산함’ 등 4척의 군함을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할 줄 알고 하신 일인가요. 

“누가 감히 짐작이나 했겠어요. 1950년 4월 10일 실전 배치된 백두산함은 6·25전쟁 발발 이튿날인 6월 26일 대한해협을 통해 부산으로 침투하던 북한군 600여명을 실은 수송선을 격침시킴으로써 후방을 지켜내는 전과를 올렸지요.” 

-‘바다로 가자’ 등 숱한 해군가를 만드셨지요. 

“창군기 해군은 변변한 군가가 없었을 때입니다. 어느 날 군인들이 행진하는 노랫소리를 듣다가 손 제독에게 ‘여보, 저 노래 좀 들어보세요. 일본 군가에 한국 가사를 붙였네요. 당신이 쓰는 가사에 제가 곡을 붙여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더니 ‘그거 좋은 생각이오. 한번 만들어봅시다’라고 화답했고, 그래서 해군 최초의 군가 ‘바다로 가자’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됐습니다.” 

-손 제독의 호가 ‘수향(水鄕)’이라고요. 

“노산 이은상 선생님이 붙여준 아호인데요. 말년 3일에 한 번씩 하던 투석 치료를 받으면서도 머리를 단정히 하고, 전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사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맡은 바 책임지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해군은 누구나 신사여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죠.”

-손 제독이 하늘나라로 떠나신 다음에도 해군과 함께 생활하고 계시지요.

“나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어디라도 갔습니다. 특히 초임 장교들의 다락방 모임을 자주 찾았지요. 그들은 자신의 월급을 모아 조그마한 다락방에 세를 들어 활동했지요. 손 제독의 ‘신사 해군’을 이어가는 것이 눈물겹도록 고마웠지요. 그래서 해군사관학교 밖에 ‘원일다락방’이라는 큰 집을 지었지요. 조용기 목사님이 수억원을 헌금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예복이 필요하다고요. 

“온 세상의 건물이 다 무너져도 우리에게는 영원히 파괴되지도 않는 천국의 영원한 집이 보장돼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근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위로하셨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도 법이 있어요. 죄 지은 몸으론 들어갈 수 없지요. 성령의 예복을 입지 않고는 절대로 천국의 문을 통과할 수 없어요.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꼭,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100세를 부러워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살아보니 100년도 한순간이네요. 이제야 예수님의 사랑이 뭔지를 알 것 같습니다. 힘들다고 화 내지 마세요. 웃을 시간도 모자라요. 미워하지 마세요. 그리고 용서해요. 사랑할 시간도 부족하거든요. 저는 매일 온몸을 깨끗이 씻고 따뜻하게 해주며 늘 밝은 마음, 웃는 얼굴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게 최고의 건강 비결입니다. 천국에 갈 때도 웃는 사람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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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 전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