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늙으면 이런 저런 병에 걸려 어차피 죽게 돼 있습니다. 대부분의 암도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흰머리나 주름살처럼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날이 갈수록 새로운 치료약제가 나오는 덕분에 암에 걸려도 5년 이상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암도 관리를 잘하면 당뇨와 고혈압처럼 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암 치료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암에 걸리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어 '암=죽음'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원장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암은 노화현상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따라 노화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근 폐암 투병 끝에 83세에 세상을 뜬 미국 영화배우 폴 뉴먼도 암에 걸려서 죽었다기보다 늙어 죽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 원장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는 데도 너무 암을 두려워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은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 자신도 언젠가는 암에 걸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는 죽음에 대한 인식, 나아가 신앙과 관련돼 있다.
그는 "생명이 있는 자는 언젠가 죽게 돼 있고, 죽은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암에 걸려 절망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달란트와 신앙으로 보살피는 것을 소명으로 여긴다. 암을 완치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안고 가야 할 '육체의 가시'로 여기는 것도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대학시절 영어회화를 배우기 위해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에서 영어로 성경공부를 하면서 신앙을 접하게 됐다. 당시에는 과학을 다루는 의학도로서 신앙적 갈등이 많았으나 신앙문제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고 말하는 사람은 눈에 안 보이는 전파를 이용하는 휴대전화를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국립암센터 직원들이 크리스천인 자신을 보고 자연스럽게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기를 바라고 있다.
직장에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각오도 다지고 있다. 그는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일부 크리스천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오지 선교를 가야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데 대해서도 못마땅해 했다. "크리스천일수록 자기 직장에서 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도 저도 안 되니 신학대학이나 가겠다거나, 다 때려치우고 해외선교나 가야겠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들이 각 사회 영역에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각자의 책임을 다할 때 자연스럽게 전도가 되는 것이지요." 크리스천들이 세상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최상의 전도 방법이라는 얘기다.
이 원장은 세계적인 암치료 병원인 미국 텍사스 MD앤더슨 암센터에서 근무하던 1999년 12월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을 직접 치료하면서 국내에 이름이 알려졌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일찌감치 최신 의학을 배우러 미국으로 갔다.
모시고 살던 어머니가 49세에 위암으로 세상을 뜨자 암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MD앤더슨 암센터에서 19년 동안 근무하면서 '닥터 리'로 이름을 날렸다.
종양내과 전임강사, 흉부 및 두경부종양내과 교수, 흉부종양내과 분과장 등을 역임했다. 2001년 미국 최고 의사(America's Top Doctors)에 올라 미국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립암센터 초대원장이었던 서울대 의대 박재갑 교수의 권유를 받아들여 2001년 귀국해 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 폐암센터장, 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2004년에는 세계폐암학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부인과 1남3녀를 두고 있는 그는 미국 시민권자다. 한인교회인 휴스턴 서울침례교회 집사였던 그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은혜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매주 한 차례 몇몇 가정이 모이는 가정교회 리더도 맡고 있다.
가족들은 그의 귀국을 만류했지만 그는 하나님이 주신 미션이라며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는 "국내 암 치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미션이며 조국에 대한 봉사"라고 말했다.
대담 정리자 : 고양=신종수 기자 3Djsshin@kmib.co.kr">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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