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던 1980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대학생이던 하종강(61)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여는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했다. 선교회 자원봉사자로서 토론 내용을 타자기로 받아치는 게 그의 일이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아는 ‘탕자의 비유’(눅 15:11∼32)가 주제였다. 토론 도중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이야기에서 클라이맥스는 어떤 대목일까요?”
하종강은 너무 쉬운 질문이라고 여겼다. ‘탕자의 비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큰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니까 정답은 뻔하다.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한 어린 여성 노동자가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돼지농장에서 돼지나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먹다가 ‘아, 이제 아버지한테 돌아가야겠다’고 깨닫는데, 이 장면이 클라이맥스 아닐까요? 굶주려 본 사람만이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뜻 같습니다.”
처음 듣는 해석에 하종강은 충격을 받았다. ‘굶주려 본 사람만이 진리를 찾을 수 있다니 이런 답변을 내놓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성경에 담긴 무궁무진한 가르침도 실감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순간은 하종강의 신앙이 새롭게 거듭난 ‘신앙의 분기점’이었다.
내 신앙의 그릇
하종강은 노동상담 분야에서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한 노동운동가다. 대학 졸업 후 인천도시산업선교회와 한국기독교산업개발원 등지에서 일했고, 1988년 12월 한울노동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전국 각지를 다니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강연 상담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대표적 노동운동가 중 한 명으로 꼽히게 됐다. 연구소를 그만두고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로 부임한 2011년 이후에도 그의 활동은 계속됐다. 최근엔 JTBC 드라마 ‘송곳’의 주인공 구고신(안내상 분)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그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섬기며 살아올 수 있었던 데는 신앙의 힘이 컸다. 모태 신앙인 그는 사춘기 시절 새벽기도에 ‘개근’할 정도로 독실했다. 최근 성공회대에서 만난 하종강은 “부모님이 나를 푸대접한다는 생각에 가출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교회에 가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종교적인 의문이 해결되지 않으니 다른 모든 문제가 무의미하더군요. 방학 때면 강원도 철원의 대한수도원에 들어가 살다시피 했어요. 매일 밤마다 산에 올라가 소나무 한 그루 붙잡고 씨름하며 새벽까지 기도하곤 했습니다. 방언이 터지는 성령의 은사를 경험한 적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하면서 신앙은 흔들렸다. 에리히 프롬, 루돌프 볼트만 등 서구 지성의 저작들을 읽으며 철학과 신학의 세계가 복잡다단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였다. 삶과 구원의 문제는 어린 하종강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불가지(不可知)의 분야였다.
“그때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나는 죽을 때까지도 하나님이 내 옆에 계신가 의심하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지 물으면 이렇게 답해요. ‘믿지만 의심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갈등이다.’ 이 정도가 바로 제가 가진 신앙의 그릇인 거 같더군요(웃음).”
사회적 약자의 종교
20여년 전, 하종강은 신학대학원에 도전한 적이 있다. 10대 시절 목사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감리교신학대 신대원 입학을 목표로 주야장천 시험과목인 성경과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만약 당시 시험을 통과했다면 하종강의 삶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신대원 입시에서 낙방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저를 시험에 떨어뜨려서 목사가 될 수 없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해요. 판자촌 같은 데 가서 목회하는 게 꿈이라고(웃음).”
창세기에 이어 성경의 들머리를 장식하는 책은 이집트 노예였던 유대인들의 삶과 탈출기를 다룬 출애굽기다. 모세가 이끄는 노예해방의 스토리가 성서의 발단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종강은 “기독교가 노예나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종교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가 노예의 종교였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기독교의 핵심 중 하나인 거죠.”
인천의 작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하종강의 직분은 집사다. 그가 보기에 바람직한 크리스천은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생각하며 주님의 뜻을 좇는 사람이다.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난 것은 ‘먹혀서 없어질 존재’라는 걸 상징하는 거라고요. 예수님은 굉장히 편향된 분이었습니다. 오직 약자만 사랑하셨고 부자를 축복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크리스천이라면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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