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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판 '쉰들러 아이들', 난민 아이들을 구하다

배남준 2016. 3. 30. 05:43
나치때 구조받은 유대인들 앞장
덥스 의원 발의 이민법 개정안 통과
유럽내 난민 어린이 수용키로
덥스 “내가 받았던 환대 받길”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 한 손에는 곰인형을 끌어안고, 여행가방 위에 앉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는 아이들.

영국 런던의 리버풀스트리트 역 광장에는 이제 막 기차역에 도착한 아이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이 서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킨더트랜스포트’(보호자가 없는 17살 이하 유대인 어린이들의 영국 입양을 허가한 정책)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상이다. 동상 현판에 새겨진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전 세계를 구하는 것과 같다”는 탈무드 글귀는 나치 치하 유럽에서 1만여명의 유대인 어린이들을 구했던 영국의 인도주의적 구호를 상징한다.

영국판 ‘쉰들러 리스트’로 해석되는 킨더트랜스포트 정책을 통해 나치 치하의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등에서 유대인 어린이 1만명 가량이 영국으로 이송됐다. 당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현재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유럽 전역의 난민 아이들을 돕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고 27일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 상원의원인 앨프 덥스(83)다. 지난 21일 덥스가 발의한 이민법 개정안은 찬성 306명, 반대 204명으로 영국 상원을 통과했는데, 이 개정안에는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는 3천여명의 난민 아이들을 영국으로 받아들인다는 핵심 조항이 포함돼 있다.

앨프 덥스는 “영국과 아이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며 이번 이민법 발의가 자신의 경험에 비롯됐다고 전했다. 나치의 인종정책이 극성을 부리던 1939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6살 어린이 덥스를 살린 것은 ‘영국의 쉰들러’라고 불리는 니컬러스 윈턴 경의 ‘킨더트랜스포트’ 덕분이었다. 평범한 주식중개인이었던 윈턴은 프라하에서만 669명의 유대인 아이들을 영국 런던으로 이주시켰는데, 덥스는 이 669명의 아이들 중 하나였다. 덥스는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법안을 통해 부모없는 3천여명의 난민 어린이들이, 1939년 내가 영국에서 받았던 환대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86살의 베라 샤우펠드 역시 니컬러스 윈턴 경의 킨더트랜스포트에 의해 살아남은 생존자다. 앨프 덥스와 마찬가지로 프라하에서 런던으로 옮겨온 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칼레 난민촌에 있는 중동 출신 아이들을 언급하며 “영국에는 아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족이 있다. 아이들은 나처럼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런던 교외의 한 가정에 입양된 그는 평생 선생님으로 일하며 영어를 제2외국어로 사용하는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영국에서는 킨더트랜스포트의 인도주의적 정신을 이어받아 어린이 난민에 대한 각별한 구호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5일, 영국 배우 주드 로를 비롯한 80여명의 유명 인사들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에게 어린이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영국은 전쟁 피해자들을 보호해온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며 “영국 총리는 유럽 전역에 흩어진 난민 아이들과 가족들을 돕는 정책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동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은 부모없이 유럽을 떠도는 어린이 난민이 약 2만4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2016  3,29      한겨레 신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