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간증

국민일보 (2016.2.6) 설날 특집 - 아마존 김철기 선교사부부 이야기

배남준 2016. 2. 6. 08:36

 

 

 

사명은 생명보다 소중 ‘검은 강’으로 돌아갈 것… 김철기 아마존 선교사의 설

주님 위해 기꺼이 죽을 분 아마존으로 오세요

사명은 생명보다 소중 ‘검은 강’으로 돌아갈 것… 김철기 아마존 선교사의 설 기사의 사진
아마존 선교 초기 시절 김철기 선교사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딸 수산나, 아내 고(故) 허운석 선교사, 김 선교사, 아들 지훈 씨. 지훈 씨는 대학 졸업 후 아마존 선교에 나설 예정이다.
‘하나님과 아마존 인디오 형제들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불꽃처럼 타올라 끝까지 신실했던 하나님의 종.’ 

남미 브라질 아마존강 상류 지역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에 위치한 ‘검은 강 상류 신학교’ 안에 있는 고(故) 허운석 선교사의 묘비명이다. 비명(碑銘)은 남편 김철기(60) 선교사가 썼다. 이들 부부는 1991년 3월부터 아마존의 선교사로 활동해 왔다. 문만 열면 달려드는 독충(毒蟲)과 풍토병, 원주민들의 ‘창끝’ 같은 거부감 속에서도 사랑의 복음을 전했고 20여 미접촉 부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지난 1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선교사는 “아내는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우리는 그토록 열망하던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었다”며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허 선교사는 2013년 9월 폐암으로 별세했다. 김 선교사는 아내를 선교지에 묻었고 지금은 홀로 선교지를 지키고 있다.

면역 강화를 위한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는 김 선교사는 아내 없는 설을 세번째 보내고 있다. 빈자리가 크다. 그는 허 선교사를 잠시 회고했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은 없었어요. 자신의 목숨보다 인디오를 더 사랑했고 그 사랑의 불꽃은 식을 줄 몰랐어요.”



시골 교회서 가난했던 예수를 배우다 

김 선교사 부부는 90년 5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세계선교부로부터 아마존 선교사 요청을 받았고 이듬해인 91년 서울 신촌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아마존강 유역 본류 중 하나인 솔리모이스강과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국경인 벤자민 콘스탄치에서 사역을 시작해 신학교 건립과 교수 사역, 교회 순회 사역을 했다. 한국에서 현지까지 가려면 비행기만 네 번을 갈아타야 한다. 더 깊은 정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카누나 보트를 이용하거나 정글 속을 걸어야 한다. 이 때문에 단기팀 봉사자 중에는 이동하다 다리를 접질리거나 다쳤다는 사례가 빈번하다.  

김 선교사는 95년 2월부터 아마존강 본류의 근원인 네그루강(검은 강) 상류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에서 바레 에리깨나 바니와 꾸리빠꾸 뚜까누 꾸베우 쌀리와 야노마미 부족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다. 이들은 검은 강 지역에서 가장 많이 사는 부족이다. 김 선교사는 이곳에 교회 4곳을 세웠고 신학교를 설립해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다. 매월 한 차례씩은 단기팀과 함께 의료 사역과 전도를 실시하고 있다. 부족 교회들의 교파 분열을 막기 위해 단일부족교회 총회 결성을 제안, ‘검은 강 인디오 성경연합교회 총회’가 탄생하는 산파 역할을 했다. 

“문명의 혜택이 닿지 않는 소수 부족민으로 태어나 수많은 질병과 가난에 시달렸고 백인들로부터 500년 동안 멸시 천대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디오들에게 복음을 들고 가는 것.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김 선교사에게 아내 허 선교사는 자신의 ‘비빌 언덕’이자 선교 사역으로 인도한 ‘하나님의 음성’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간다. 신학생 시절이었다. 허 선교사는 남편이 신학생이면서도 기도를 게을리한다고 여겼다. 어느 날 “이럴 바엔 그냥 이혼하자”고 엄포를 놨다. 김 선교사는 두려움을 느꼈고 그 길로 북한산 꼭대기에 올랐다.  

1월의 엄동설한 속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했고 기도가 끝날 무렵 세미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나사렛과 갈릴리를 다니신 예수의 가난한 삶을 배우라는 말씀이었고, 또 하나는 목회자 없이 버려져 있는 농촌 교회의 양들을 돌보라는 마음의 소리였다. 이에 순종해 찾은 곳이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이었다. 이들 부부는 1984년 목사 없이 13가정만 있는 교회에 부임했다. 주민들은 가난했고 김 선교사 부부도 가난했다. 농민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섬겼다. 김 선교사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덫을 놓으셨다. 자기부인(自己否認)과 십자가의 덫이었다”며 “예수께서 예루살렘이 아니라 스불론과 납달리, 갈릴리 등 가난한 지역에서 활동하셨던 이유를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농촌 목회는 아마존 선교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녹색 지옥’ 아마존에 살다 

아마존은 문명을 맛본 사람들은 살기 어려운 곳이다. 출입문만 열면 5분 안에 각종 벌레가 달려든다. 오전 6시30분에서 한 시간가량은 ‘네롱’이란 벌레가 문다. 오전 7시30분터 오후 6시30분까지는 ‘삐웅’이란 벌레가 문다. 한낮에는 ‘무뚜까’라는 파리가 사람을 공격한다. 잔디밭을 거닐면 ‘무꿍’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가 살을 타고 올라온다. 그리고 무릎 쪽에서 7일 동안 서식한다. 밤에는 말라리아와 뎅기열 모기가 끊이지 않는다. 고온다습한 적도 날씨는 한국으로 말하면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의 연속이다. 습도는 낮에 80%, 밤에는 90%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어딜 가나 곰팡이가 피어 있다. 김 선교사는 그러나 이 같은 환경을 ‘감춰진 보화’로 설명했다.  

“아마존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장소입니다. 저는 거기서 25년을 살아왔지만 지금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거기엔 아직 복음을 모르는 수많은 원주민 인디오들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어 예배하는 것보다 더 귀한 보물이 있을까요.” 

김 선교사는 2003년 인디오 부족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그를 독살하기 위해 부족민 누군가 마시는 물에 독을 푼 것이다. “부족들의 가장 중요한 덕이 복수입니다. 그들에게 감정적, 언어적 피해를 줬다고 생각하면 잠시 물러나 있다가 정글에 서식하는 독초 등을 음식에 타서 독살합니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외부자에 대한 반응이지요. 저는 심한 복통을 앓았으나 다행히 소량의 독이어서 죽지는 않았습니다. 신학교 제자 중 한 명도 독을 먹었는데 한 달 후에 사망했어요. 사단이 그들에게 숨겨놓은 저주가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됐습니다.”

김 선교사는 독을 마시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이들을 사랑해서 여기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선교사이기 때문에 여기에 와 있는 것인가. 독물을 마신 경험은 김 선교사를 더욱 하나님 앞에 서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원주민을 더 사랑하도록 했다.  

“원주민 인디오들은 부끄러움과 수치의 문화가 있습니다. 그들 집단의 무의식 속에요. 그래서 우리의 목표 중 하나는 부끄러움과 수치로부터 자신이 인디오 크리스천이라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 믿는 인디오들이 미접촉 부족민에게 복음을 전하게 됐다. 2009년에는 인디오 신학생들에게 회개운동이 일어났다. 신기하게도 그때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신학교 주변 망고나무에서 이듬해부터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다.  

“선교사로서는 원주민들이 하나님을 믿고 브라질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기쁜 일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언되어야만 그때야 끝이 온다(마 24:14)는 사실은 미접촉 부족 속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을 흥분하게 만듭니다.”  

설 연휴가 지난 뒤 아마존으로 돌아가는 김 선교사에게 언제 선교 사역을 마칠 생각이냐고 물었다. “사명은 생명보다 소중합니다.” 그의 대답은 리빙스턴 선교사의 말이었다. 그는 아마존에 더 많은 선교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주님을 위해 기꺼이 죽을 분들은 아마존으로 오십시오. 아마존은 죽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죽을 만큼의 사랑과 열정이 있다면 아마존은 숨겨진 보화가 있는 밭입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