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나님/ 차별없는 세상 꿈꾸게 하셔
“하나님은 참 공평하세요. 저 같은 시청각 장애인에게도 도전은 무한합니다.”
‘중복 장애인.’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원석(24·숭실대 사회복지학부 4학년)씨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어릴 때부터 보통사람보다 훨씬 더 힘들게 세상을 헤쳐 나와야 했다. 신체적 핸디캡이 너무도 많았지만 조씨의 의지만큼은 가히 불굴(不屈)이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중복장애인 권익단체인 (가칭)‘스네일스 앤드 윙스(Snails & Wings·달팽이와 날개들)’를 설립하기 때문이다. 온 힘을 다 바쳐 시청각 중복장애인들의 복지와 법적 지원제도 정착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아직 중복장애인 단체로는 관련부처인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곳이 없는 상태다.
조씨를 8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우리 사회는 아직도 시청각 중복장애인의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이 고난당하는 것을 방치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시청각장애인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소중한 인간이다. 회원 10여명과 함께 다음 달 초 발족모임을 가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처음 출발은 그냥 ‘임의단체’지만, 조만간 공익법인으로 등록할 작정입니다.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해나갈 겁니다.”
조씨가 이 단체를 만들기로 결심한 건 미국의 ‘헬렌켈러센터’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청각 장애를 갖고 태어났던 헬렌 켈러를 기리며 만들어진 이 센터는 1967년 미국 의회가 ‘헬렌켈러법’을 제정해 시청각 중복장애의 개념을 규정하고 이들 장애인을 위한 지원 체제를 갖추면서 세워졌다. 현재 뉴욕 본사와 미국 전역 10개 지부를 두고 있다.
조씨가 장애를 갖게 된 건 7살 때였다. 열이 나 그냥 감기에 걸렸거니 했던 부모는 뒤늦게 병원에 아들을 데려갔고 심한 뇌수막염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조씨는 청력을 거의 상실했고 눈도 보이지 않게 됐다. 청력을 잃으니 말도 어눌해 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장애에 대한 콤플렉스에 수없이 몸부림치던 그에게 탈출구는 책을 읽는 것이었다. 점자 서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조씨의 끝없는 도전은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관장 김미경)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두 번이나 장학금을 제공했다. 복지관 고용지원센터 신혜경 팀장은 “의사소통에 다소 문제가 있지만 지적 능력이 탁월해 공부하고 사회활동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조씨와의 대화에는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 사람들의 말을 점자로 바꾸는 정보단말기와 그의 말을 입력해줄 도우미다. 숭실대 장애학생지원센터에는 조씨 같은 장애인을 돕는 자원봉사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버스나 택시 승차 거부, 음식점 출입 거부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저와 같은 사람들이 차별을 참고 견딜 수는 없습니다. 그냥 착한 장애인으로 살기보다는 건강한 인간으로 대접받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 사회를 바꾸고 싶어요.”
힘들지만 그의 말투에는 힘이 들어 있었다. 옆에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안내견 ‘평등’이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평등이라는 이름도 “모든 인간이 신체와 장애, 인종과 성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조씨 소망이 담긴 것이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